'한한령'(한류 제한령)으로 지난 5년 동안 꽁꽁 닫혔던 대륙의 빗장이 열리고 있다. 1~5월 중국에서 한국 드라마 13편이 줄줄이 공개된 것으로 파악됐다. 박서준, 송혜교, 이종석이 주연한 한국 드라마가 중국 3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아이치이· 요우쿠·텐센트)에 모두 정식 유통됐다. 한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에 대한 보복 조치로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한국 드라마가 중국에서 단 한 편도 TV와 OTT에 공개되지 못했던 것을 고려하면 대대적 개방이다. 중국 정부가 윤석열 새 정부와의 우호적 관계와 올해 양국 수교 30주년을 염두에 두고 유화적 제스처를 취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5일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중국에서 운영 중인 베이징비즈니스텐에 따르면, 올 1~5월 현지에서 정식 유통된 한국 드라마는 박서준 주연 '이태원 클라쓰'(2020) 등 총 13편으로 집계됐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2018)가 2017년부터 시행된 한한령 후 처음으로 올해 3월 중국 방송 규제 부처인 광전총국의 심의를 통과한 뒤 한국 드라마가 연 이어 대륙에 상륙한 것이다. 국내에서 1월 종방한 송혜교 주연의 최신작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요우쿠)'도 서비스되고 있다.
중국 내 한국 드라마의 정식 유통은 올 초까지만 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올해 1월에 이영애 주연의 '사임당 빛의 일기'가 중국 지역 방송사 후난오락을 통해 한한령 이후 처음 전파를 탔긴 했지만 이 드라마는 6년 전인 2016년에 이미 심의를 통과했던 터라 한한령 해제로 보기는 어려웠다.
여전히 풀리지 않았던 규제는 3월부터 슬슬 사라지기 시작했다. 3월 9일 대선에서 사드 추가 배치를 공약하고 한미 동맹을 강조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당선됐지만 물꼬는 막히지 않았다. 1월 종방한 '배드 앤 크레이지'(아이치이)가 지난달 25일부터 서비스되는 등 5월에만 세 작품이 잇따라 정식 유통됐다. 윤호진 콘진원 베이징비즈니스센터장은 한국일보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4월 8일 중국 최대 포털 바이두에서 갑자기 중국에 정식 유통되지 않은 한국 드라마 '사내 맞선'(4월 종방)이 인기 검색어 8위에 올랐다"며 "중국의 정치적 통제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소비가 어떻게 이뤄지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으로, 방송에서 한한령은 사실상 해제된 분위기"라고 말했다. 지난해 하반기 신드롬을 낳은 드라마 '술꾼도시여자들' 등을 두고 중국 리메이크 논의도 양국 콘텐츠 업계에서 오가고 있다.
한한령 해제 기류로 한국 콘텐츠가 OTT를 중심으로 대륙을 다시 파고들고 있지만 K팝 공연은 여전히 이중고를 겪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 정부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미성년자가 연예인을 응원하기 위해 돈을 마구잡이로 쓰는 것을 막기 위해 '무질서한 팬덤에 대한 관리 강화' 방안을 발표한 데다 코로나19 방역 관리도 여전히 엄격하기 때문이다. 한국과 중화권 공연을 잇는 에이전시 대표는 "코로나로 인한 이동 제약이 풀려야 하는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3연임을 결정짓는 10월 당 대회까진 중국 '제로 코로나' 기조가 유지될 것"이라며 "한중 수교 30주년 관련 정치적 이벤트에 따른 축하 공연 외 개별 K팝 공연은 적어도 올해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양국의 콘텐츠 업계 관계자들은 한한령보다 자국산 제품을 선호하는 중국 20~30대들의 '애국 소비'에 불똥을 맞지 않을까를 더 걱정하고 있다. 지난해 중국에선 나이키와 아디다스 등 해외 브랜드 불매 운동이 일어 두 브랜드의 매출은 줄고 토종 브랜드 매출이 전년 대비 50% 증가했다. 중국에 판권을 여럿 판매한 한 드라마 제작사 대표는 "중국 MZ세대들이 애국주의 소비 흐름을 보이는데다 한국과 중국의 젊은 세대들이 최근 몇 년간 서로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키운 게 콘텐츠 유통의 변수가 될 수 있다"고 걱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