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대로 '역주행'이다. 수명을 다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질 찰나에 터진 몸값 폭등이다. 21년 전, 첫 출시 당시에 비해 100배를 훌쩍 넘긴 가격으로 새 주인 찾기에 나선 '물건' 얘기다. 지난달 10일, 단종 소식이 알려진 애플의 휴대형 MP3 플레이어인 '아이팟' 스토리다. 실제, 최근 글로벌 전자상거래 업체인 이베이엔 아이팟 1세대 상품이 2만9,999달러(약 3,800만 원)에 올라왔다. 자메이카 출신의 레게 뮤지션인 밥 말리가 새겨진 한정판 미개봉 상품 가격은 4만4,995달러(약 5,700만 원)에 달했다. 지난 2001년 첫 출시됐던 아이팟 1세대가 399달러(약 50만 원)에 판매됐던 시세를 감안하면 격세지감이다. 사실, 애플에 아이팟의 존재감은 각별하다. 아이팟이 없었다면 오늘날 세계 정보기술(IT) 업계의 절대강자로 올라선 애플 또한 진즉에 사라졌을 것이란 게 정설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애플의 간판인 아이폰에 밀리면서 도태의 길로 들어섰지만 말이다. 애플 창업자인 고 스티브 잡스 대표작인 아이팟의 파란만장했던 족적을 디자인별로 살펴봤다.
2001년 10월, 혁신의 아이콘으로 통했던 스티브 잡스의 청바지에서 나온 첫 아이팟 데뷔작이다. 성능도 상당했다. 5기가바이트(GB) 용량에, 1,000곡까지 저장이 가능했다. 10시간 사용 가능한 배터리와 185g에 불과했던 몸무게는 충격에 가까웠다. 작지 않은 크기의 CD플레이어가 대세였던 당시 상황을 감안하면 획기적이었다. 파산 직전까지 다다랐던 애플은 이렇게 출몰한 아이팟 덕분에 세계적인 IT기업으로 재탄생했다.
2004년 2월 미국에서 출시 직후부터 전 세계에서 품절사태를 동반한 가운데 '아이팟붐'까지 한층 가열시킨 제품이다. 아이팟 클래식 시리즈보다 아담한 크기와 용량(4GB)으로 등장했다. "청바지의 작은 주머니에는 무엇이 들어갈까"라는 캐치 프레이즈를 달고 나올 정도로 손에 쏙 들어가는 크기였다. 분홍색, 하늘색, 연두색 등으로 색상도 다양했다. 볼륨 조절과 더불어 곡을 넘길 수 있는 원형의 조작키, '클릭 휠' 등이 처음으로 탑재됐다.
체질 개선부터 눈에 들어왔다. 아크릴 본체를 채용해 흠집에 약했던 전작의 단점을 산화피막 알루미늄 소재 적용으로 보완했다. 기존 아이팟에 채용했던 하드디스크와 달리 생산 단가가 더 저렴하고, 가벼운 '플래시 메모리'를 사용했다. 연필보다 얇은 69㎜의 나노 1세대보다 더 날씬한 체형으로 디자인됐다. 용량도 2GB부터 4GB, 8GB까지 늘리면서 선택의 폭을 넓혔고 최대 24시간까지 사용 가능했다. '레드 스페셜 에디션'의 판매 금액 중 10달러는 아프리카의 에이즈 퇴치를 위한 국제 기금에 기부된 부분도 주목됐다.
출시 6년 만에 1억 대의 아이팟 누적판매고를 달성한 2007년, 스티브 잡스는 또 하나의 야심작으로 돌아왔다. '아이폰'과 구분하기 힘든 외관에 기능까지도 쏙 닮았다. 무엇보다 '멀티 터치 인터페이스(사용자이용환경)'로 요약된 혁신 기술을 구현한 아이폰 기술이 그대로 스며들면서 차원 높은 스마트기기로 진화됐다. 최대 32GB까지 확 커진 용량에, 3.5형 크기의 멀티 터치 디스플레이 장착으로 아이팟의 상징인 '클릭 휠'을 벗어났다. 근거리무선통신(와이파이) 연결로 인터넷 검색이나 유튜브 감상 또한 가능했다. 과거 컴퓨터(PC) 연결을 통해 접속할 수 있었던 '아이튠즈(애플의 미디어 관리 프로그램)'의 직접 실행 또한 수월했다.
탁월한 몸매부터 눈에 들어왔다. 지금까지 출시됐던 아이팟 중 가장 날씬한 5.4㎜ 두께에, 2.5인치의 멀티 터치 디스플레이 덕분이다. 기존 모델보다 더 얇고 커진 모양새다. 새롭게 추가된 홈버튼도 소비자들의 눈을 사로잡기엔 충분했다. 16GB 용량으로, 30시간 연속 음악 재생에도 무리는 없었다.
2GB 용량에, 최대 15시간까지 음원 재생이 가능한 105밀리암페어시(mAh) 배터리를 내세웠다. 앞서 소개됐던 아이팟과 달리, 디스플레이가 생략된 게 가장 큰 특징이다. 대신 노래 제목·플레이리스트·배터리 상태 등을 볼 수 있는 '보이스오버' 버튼으로 새로움이 가미됐다. 실버, 블루, 그린, 오렌지, 핑크 등 다양한 색상과 비교적 저렴한 가격(6만5,000원)도 파격적으로 다가왔다.
통화기능만 빠진 ‘아이폰’을 빼닮았다. 32GB와 128GB에 256GB 대용량 버전을 추가, 보다 많은 음악과 영상 저장까지 책임졌다. 6.1㎜ 두께와 88g 무게로, 40시간 음악 감상 및 8시간 연속 영상도 소화했다. 800만 화소 후면 카메라와 120만 화소 전면 카메라도 특징이다. 시리즈에선 처음으로 증강현실(AR) 기능도 추가했다. 이전 모델 대비, 3배 향상된 그래픽 성능으로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한 게이머들까지 유혹했다. 여러 명과 동시 대화가 가능한 ‘그룹 페이스타임 기능’ 또한 신선하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