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리는 신호 없이 빠르게 손님 집에 도착했다. 기분이 좋아 경쾌한 박자에 맞춰 문을 두드렸다. 똑똑. "배달 왔습니다." 응답이 없다. 계속 두드려도 반응이 없어 손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았다. 급체한 듯 가슴이 갑갑했다. 채팅만 가능한 고객센터에 톡을 남겨 상담 요청을 하고 다시 손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음이 귀에서 울리는 동안 우편함의 우편물 주소와 배달 주소지를 대조했다. 주소는 틀림없었다. 5분 정도 지나 손님이 나타났다. "그냥 문 앞에 두시고 가면 되는데." 읊조리며 음식을 받아 지나갔다. '미안해요'가 아니어서 말문이 막혔다. 손님의 뒤통수에 대고 '다음엔 문 앞에 놓아 달라고 메모 남겨주세요'라고 외쳤다. 대꾸는 없었다. 고객센터 직원이 '배달은 완료하셨나요?'라는 톡을 남겼다. 답하지 않았다.
며칠 뒤 같은 상황이 반복됐다. 음식을 놓고 가고 싶었으나 사라지기라도 하면 손님의 못된 말과 음식값을 모두 떠안아야 할 수도 있다. 고객센터에 톡을 남겼다. 채팅도 ARS처럼 담당자를 찾는 단계를 거쳐야 한다. 우여곡절 끝에 담당자와 채팅을 할 수 있었는데, 음식을 한 시간 동안 보관했다가 그래도 연락이 없으면 폐기하라고 했다. 그리고는 일방적으로 상담을 종료시켰다.
약속이 있어 이 배달만 마치고 퇴근해야 했다. 담당자를 찾는 채팅부터 다시 시작했다. 와중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고 손님 번호인가 싶어 재빨리 받았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책협약을 맺고 싶다는 정당 관계자 전화였다. 토요일 밤 8시였다. 배달 중이니 메일로 연락 달라 하고 다시 채팅창을 봤는데 상담 종료가 떴다. 일정 시간 반응하지 않으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이다. 울화가 치밀었지만 손가락을 진정시키고 다시 채팅을 시작했다. 퇴근을 해야 한다 했더니 가게에 음식을 돌려주라 했다. 한숨이 나왔지만 손가락으로 고함을 칠 수는 없었다. 가게에서 다시 만난 사장님의 눈이 동그래졌다. 나를 붙잡는 대신 배민에 연락해야 한다는 사실을 납득시키느라 쩔쩔맸다. 이 배달 때문에 30분 동안 일도 못 하고 약속도 늦었다고 읍소를 하고 나서야 그 가게를 떠날 수 있었다.
가게를 나오는 순간 손님에게 전화가 왔다. 사과는 없었고 음식의 행방부터 물었다. 금방이라도 언성이 높아질 것 같은 떨림이 느껴졌다. 본인이 전화를 받지 않아서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상상도 못할 터였다. 설명을 포기하고 고객센터로 연락하라고 안내 후 끊었다. 손님은 사태의 원인과 책임을 묻기 위해 라이더, 고객센터 노동자, 식당 주인을 차례로 찾게 될 것이다. 소비자들은 예쁜 상품을 구매하는 순간에는 생산과정과 노동자를 떠올리기 힘들지만, 상품에 흠결을 발견하는 순간 누가 어떻게 생산하는지를 꼼꼼히 따지게 된다.
교양 없는 손님을 비난하며 자고 일어났는데 부재중 전화가 두 통 와 있었다. '일요일 아침부터 누구야' 짜증내며 핸드폰을 확인했더니 택배노동자의 문자가 와 있었다. 내가 주소를 잘못 적었다. 부끄러움이 확 올라와 얼굴이 붉어졌다.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가 그게 노동자에게 무슨 도움이 될까 싶어 다시 부끄러워졌다. 노동자가 고객 때문에 어려움을 겪어도 피해를 입지 않는 일터를 만드는 게 교양 있는 소비자가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보다 중요한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