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 경기 이천시 유기동물보호소 동물보호관리시스템(APMS)에 올라온 유기견 공고는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온몸에 화상을 입은 채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강아지 사진이 올라와서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태어난 지 몇 개월 안 된 강아지는 화재로 보호자를 잃고 화상을 입은 채 무려 17일이나 치료를 받지 못했다(관련기사 ☞ 화상 후 17일 동안 치료 못 받아…'아톰'의 상처가 보이시나요). 상황을 알게 된 동물보호단체 비글구조네트워크(비구협)는 강아지를 구조한 후 '아톰'이라고 이름 지었다.
아톰은 생사의 고비를 넘겼지만 후유증은 컸다. 피부 대부분이 괴사한 데다 한쪽 눈은 감기지 않고 발가락 일부는 녹아 없어졌다. 비구협 쉼터로 온 뒤 꾸준한 치료가 필요했고, 미래는 밝지 않았다. 장애 유기견은 가족을 찾기 더 어려워서다. 쉼터에서 6개월을 기다렸지만 입양 문의조차 없었던 아톰에게 기적 같은 일이 생겼다. 아톰과 평생 함께하겠다는 가족이 극적으로 나타나면서다. 구조 1년 3개월이 지난 아톰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입양자 정보경(35)씨가 처음 아톰을 알게 된 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서다. 정씨는 구조 당시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화상을 입은 아톰을 보고 너무 마음이 아팠다. 이미 노견인 '하니'와 '콩이', 보호소에서 데려온 대형견 '버터'를 기르고 있어 쉽게 입양 결정을 하지 못하던 중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어 보자는 생각에 지난해 10월 아톰의 임시보호를 결심했다.
임시보호였지만 장애가 있는 개를 데려오는 건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터다. 정씨는 "손이 많이 가는 친구는 쉽게 임시보호나 입양 가기 힘들 것 같았다"며 "아톰의 건강 회복을 돕고 좋은 가정이 있으면 보내 주자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아톰은 생각보다 새 환경에 빠르게 적응했다. 처음에는 겁을 먹고 정씨 품에만 안겨 있었지만 곧 다른 가족을 따르고 개들과도 잘 지냈다. 1주일 만에 제집인 양 마음 놓고 코를 골며 잠을 자기 시작했을 정도다. 학대를 받아 소극적 성격이던 버터가 아톰의 적극성에 오히려 덩달아 밝아졌다. 정씨는 "아톰은 예쁜 짓을 정말 많이 한다"며 "애교도 너무 많다"고 자랑했다.
하지만 장애견과 사는 게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가장 힘들었던 건 17㎏ 덩치인 아톰이 배변을 가리지 못하는 점이었다. 정씨는 "아톰은 처음에 발바닥 감각이 없어 배변패드를 찾지 못했다"며 "집안 전체에 패드를 깔아놓고 패드 면적을 조금씩 줄여 나가며 폭풍 칭찬을 통한 교육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배변을 가리기 시작한 건 2개월이 지나서였다"며 "패드에 배변하고 오면 칭찬해주고 간식을 주니 배변하는 척만 하고 와서 간식을 조르기도 한다"며 웃었다.
아톰의 건강 관리도 큰 과제다. 정씨는 "처음 집에 데려온 이후 유명하다는 동물병원을 여러 군데 가봤다"며 "모두 당장 수술은 힘들다. 눈이 따갑고 아프겠지만 살아 있는 게 기적이라는 얘길 들었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정씨 가족은 임시보호를 시작한 지 2개월 만에 아톰을 입양하기로 결정했다. 무엇보다 정이 든 아톰을 다른 곳으로 보내고 싶지 않았고, 임시보호가 끝나도 다른 임시보호자나 입양자를 찾기 어려울 것이라는 동물단체의 설명을 들어서였다. 정씨는 "한 마리 더 입양할 거면 입양 갈 가능성이 낮은 개를 데려와 돌봐주자는 데 가족의 의견이 모아졌다"며 "앞으로 들어갈 병원비가 부담이지만 빨리 데리고 와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걸 해주자고 마음 먹었다"고 말했다.
아톰의 피부는 많이 좋아졌지만 여전히 상처는 크다. 산책을 나가면 처음 보는 사람 대부분은 큰 덩치에 상처 깊은 얼굴을 보고 놀란다. 정씨는 "사람들이 무서워할 수 있겠다 싶어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조심한다"며 "다만 아톰이 겁이 많은 편이라 사람이나 다른 개들에게 먼저 다가가지 않아 지금까지 다른 사람과 갈등은 없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반려견을 입양하려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묻자 돌아온 답은 ‘책임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