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브란스병원, 26년 만에 간이식 1500례 달성

입력
2022.06.02 21:47
고위험군 위주 생체 간이식 1년 생존율 90% 이상 성과

세브란스병원이 1996년 간이식을 처음 시작한 이래 26년 만에 간이식 수술 1,500례를 달성했다. 뇌사자 이식 454례와 그보다 어려운 생체 이식 1,046례를 각각 기록했다.

1,500례 간이식 수술 주인공은 강원도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A(61)씨. A씨는 고혈압 외에 특별한 질병 없이 건강하게 지내고 있었다. 농사를 지으면서 주 3~4회씩 먹은 막걸리가 문제였다.

2015년 지역 병원에서 간경변 진단을 받고 금주를 결심했지만 집 안에 일이 있을 때마다 음주를 하곤 했다. 간경변이 조금씩 진행돼 합병증으로 복수까지 차기 시작했고 지난해 11월에는 간암 의심 소견을 받았다.

간암 치료를 위해 최진섭 세브란스병원 간담췌외과 교수를 찾아 간경변이 심해져 색전술이나 고주파 치료보다 간이식을 가능한 빨리 준비할 것을 권유받았다.

하지만 A씨는 가족에게 이 말을 꺼내기 어려워 망설였다. 가족과 함께 주동진 이식외과 교수에게 간이식에 관한 상세한 설명을 들은 뒤 A씨 부인(60)이 선뜻 간 기증 의사를 밝혀 간이식을 빨리 받게 됐다.

공여자 나이가 60세인 만큼 고령 기증자 정밀 검사까지 시행한 후 간을 기증했다. 현재 A씨는 수술 20일 만에 회복해 퇴원했고 농사를 다시 지을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어 있다.

간이식은 간암, 간경화 등으로 간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환자를 대상으로 한다. ‘침묵의 장기’로 불리는 간인 만큼 많은 환자가 약물, 시술, 수술로 치료가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이러한 환자들에게 간이식은 최후의 보루다.

과거에는 간이식 원인은 B형 간염이 75%로 높은 비중을 차지했지만 최근에는 간암이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비만에 의한 지방간염으로 이식을 받은 케이스가 가장 많다. 소아 비만이 늘고 있는 한국에서도 지방간염에 의한 이식이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간이식을 받으려면 몇 가지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생체 이식은 기증자 간이 절제한 후에 30% 이상 남아 있어야 가능하다.

간이식을 받는 환자는 체중과 이식받는 간 무게를 비율로 표현한 GRWR 수치가 0.8 이상이어야 한다. 간암 환자 이식에서는 종양 크기, 개수, 침범 정도를 고려해야 한다. 혈액형이 맞지 않거나, 기증자 간 크기가 작거나, 간암이 상당히 진행됐다면 간이식이 어렵다.

1996년 간이식을 시작한 세브란스병원 간이식팀은 지난 26년 간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불가능했던 혈액형 부적합 간이식을 2012년 성공했다. 현재는 20% 정도가 혈액형 부적합 간이식이다.

병기가 많이 진행해 이식이 불가하다고 판정받은 간암 환자들에서도 병기를 낮춘 후 성공적인 간이식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폐에 전이가 있었던 간암 환자에게 간이식을 성공해 10년 가까이 간암의 재발 없이 생존하고 있는 결과를 보고하기도 했다.

간 질환을 앓아 주변 장기까지 나빠진 환자를 대상으로 다른 장기를 동시에 이식하는 다장기 이식도 고위험 수술에 속한다. 뇌사자 폐와 생체 기증자 간을 동시에 이식하는 수술을 최초로 선보인 곳이 세브란스병원이다.

1,500례 간이식을 하는 동안 이러한 고위험군 치료에 앞장서는 가운데 우수한 치료 성적을 자랑하고 있다.

생체 간이식 생존율은 90.2%(1년), 80.8%(5년)이다. 혈액형 부적합 등 고위험군 간이식이나 생체 간이식이 많지 않은 미국 간이식 통계 연보 생존율은 92.2%(1년), 74.5%(5년)였다.

세브란스병원 간이식팀은 기증자, 수혜자 모두를 위한 술기 개발에 힘쓰고 있다. 기증자 흉터를 최소화하고 회복을 빠르게 하기 위한 노력으로 2016년 로봇 기증자 간 절제술을 국내 최초로 시행했으며, 현재도 활발히 로봇 수술과 복강경 수술을 간 기증자에 적용 중이다.

또 긴밀한 다학제 진료 시스템을 갖춰 환자 맞춤형 치료를 시행 중이다. 간이식을 직접 시행하는 이식외과·간담췌외과는 물론이고 소화기내과·방사선종양학과·영상의학과·마취통증의학과·진단검사의학과 등 다양한 진료과 의료진이 모여 긴밀히 협진하고 있다.

간이식은 수술 뿐만 아니라 수술 후 장기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장기이식센터는 환자와 기증자의 수술 전∙후 장기적인 관리를 위해 의료진과 코디네이터들이 협조해 환자의 세밀한 부분까지 살피고 있다.

주동진 교수는 “간이식 1,500례 달성이라는 기록을 세우는 데까지 많은 어려움이 따랐지만 환자 회복과 기증자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뒀다”며 “기록을 넘어 세브란스병원을 거친 모든 환자가 소중하고 앞으로도 환자들의 회복을 위해 연구하고 도전하겠다”고 했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