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석 달째로 접어든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소통 행보'가 화제다. 190㎝ 장신과 속사포 같은 말투가 인상적인 그의 통화정책 설명은 쉽고 명확하다. "당신이 내 말을 분명히 이해했다면 잘못 이해한 것"이라고 했던 전설의 미국 연준 의장 앨런 그린스펀의 후예답게 모호한 화법으로 일관하던 전임 총재들과는 사뭇 다르다. 서울대 교수와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을 거쳐 아시아개발은행(ADB)과 국제통화기금(IMF)에서 근무한 폭넓은 경험이 그 배경으로 꼽힌다.
▦ 지난달 26일 취임 후 처음 통화정책방향 회의를 주재한 뒤 가진 기자회견부터가 신선했다. 기준금리가 두 달 연속 인상된 이날, '당분간 물가에 중점을 두겠다'는 회의 결정문 문구를 두고 '당분간'이 시장 해석대로 3~4개월을 뜻하는 게 맞느냐는 질문이 나왔다. 한은이 금리 인상 기조를 언제까지 유지할지를 가늠하려는 유도성 질문이었다. 회견장은 총재가 적당히 답변을 피해 가겠거니 했지만, 그는 시원스레 "그렇다"고 인정했다. '사이다 답변'은 계속됐고, 시장은 한은이 연내 금리를 세 번쯤 더 올리려 한다고 확실히 감 잡았다.
▦ 나흘 뒤 한은 총재와 시중은행장들의 정례 회의인 금융협의회에서도 이 총재의 소통 노력은 이어졌다. 보통은 참석자들이 한은 실무진이 준비한 금융·경제 현안 자료를 앞에 두고 환담하는 자리였지만, 그는 은행장들에게 기준금리 인상 배경을 직접 브리핑했다. '은행의 은행'으로 시중은행엔 갑(甲)이라 할 수 있는 중앙은행 수장이 보고를 자청하면서 생산적 의견을 나눌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한 것이다.
▦ 조직에선 직원들과 교류를 넓히고 있다. 지난달 중순부터 매주 금요일 오후 4~5시를 '총재와의 대화' 시간으로 정하고, 직위와 상관없이 신청만 하면 어떤 주제로든 대화를 나누고 있다. 지난 10여 년간 스타일이 전혀 다른 두 총재가 상반된 방식으로 기관을 운영하면서 내부에 쌓인 갈등과 긴장을 풀어주는 효과가 기대된다. 전 세계적 인플레이션 추세로 한은 또한 매파적 통화 긴축 정책이 불가피하지만, 소통만큼은 이 총재처럼 비둘기파 행보를 견지하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