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농업 용수 끌어다 주고, 6개월 마다 신입생 뽑고" 반도체 힘껏 밀어주는 대만

입력: 2022.06.09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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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반도체 성공 원인은 정부의 적극 지원 때문"
민간 스스로 성과 어려워...정부가 먼저 R&D
기업 부지, 용수, 전기 인프라 정부가 대신 구축
인력난 호소에 6개월마다 반도체 인력 선발

지난해 4월 대만에 기록적인 가뭄이 발생하자 전 세계 산업계가 긴장했다. 물이 부족해 TSMC 생산공장이 멈출 수 있다는 걱정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반도체 생산 과정에는 화학물질을 세척하는 데 엄청난 양의 물이 필요하다. 이때 대만 정부는 농번기를 맞은 농민들을 설득했다. 농업 용수를 국가 최우선 산업인 반도체 공장으로 돌리자는 것이다. 이어 대만 정부는 물 절약운동, 우물파기, 비 구름 만들기 등 반도체 공장 정상화를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그 결과 TSMC 등 대만 반도체 기업은 공장이 멈추는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었다.

대만에서 TSMC, 미디어텍 등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반도체 기업이 나올 수 있는 배경에는 정부의 든든한 뒷받침이 있었다. 대만 정부는 연구개발(R&D) 투자에 과감히 나섰고, 기업의 애로 사항을 해결하는 데 적극적이었다.

테리 차오(Terry Tsao)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 대만 지사장은 한국일보와 서면 인터뷰에서 "대만이 반도체 산업에서 성공을 거둔 원인은 20세기 후반 대만 정부가 세운 정책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1974년 중소기업의 기술 혁신을 지원하기 위해 세운 산업기술연구원(ITRI)에서 TSMC, UMC 등 분사 기업이 쏟아졌다"며 "동시에 대만 출신 전문 인력이 해외에서 돌아오고 민간 투자가 늘면서 설계, 제조, 패키지를 아우르는 공급망을 갖췄다"고 말했다.

대만 정부가 공장까지 구축해 민간에 제공

대만 정부는 1970년대부터 기업과 연구단체, 대학과 네트워크를 만들어 반도체 등 제조 산업의 밑바탕을 튼튼하게 만드는 데 힘을 쏟았다. 특히 1985년 당시 텍사스 인스투르먼트 부사장이었던 모리스 창 TSMC 전 회장을 ITRI 원장으로 영입하면서 대만 반도체 생태계는 꽃피우기 시작했다. 대만 정부는 창 전 회장의 파운드리 사업 제안을 받아들여, 대부분의 창업 자금과 설비 투자를 쏟아부었다.

대만 정부는 반도체 산업처럼 진입 장벽이 높은 분야에서는 민간 영역 스스로 성과를 내기 어렵다고 봤다. 때문에 정부가 R&D 투자에 직접 나서기로 하고 상품 개발에 필요한 기술과 인력을 확보한 뒤 이를 민간에 넘겨주는 방식을 택했다. 이를 위해 반도체 기업과 연구기관, 관련 인재를 키울 수 있는 대학을 패키지로 묶어 신주과학산업단지, 중부과학산업단지, 남부과학산업단지와 같은 반도체 핵심 클러스터를 마련했다. 이 중 신주과학산업단지에는 TSMC를 비롯해 디스플레이 업체인 AUO와 UMC 등 반도체 기업이 있고, 칭화대와 자오퉁대 등 대만의 유명 대학과 연구기관인 ITRI도 터를 잡고 있다.

대만 정부는 산업단지 입주 기업에 ①최대 9년 동안 법인세를 면제해주고 ②대출 금리를 낮추고 ③R&D 보조금 등 다양한 혜택을 제공했다. 또 반도체 공장 부지를 직접 개발하고 용수와 전기 인프라까지 구축해 공장을 지은 뒤 기업에 빌려줬다. 대만 정부는 산업단지에서 대만 곳곳을 하루 만에 이동할 수 있는 고속철과 고속도로 등 인프라도 만들었다.

"중국으로 간 기업 돌아오게 하자...파격 지원"

특히 2016년 집권한 차이잉원 총통은 "민간 기업이 일자리 창출의 주인공"이라며 중국으로 빠져나간 기업들을 대상으로 파격 지원책을 꺼냈다. 그 결과 정책을 시행한 지 2년 만에 해외에 진출했던 209개 기업이 대만으로 돌아왔고, 이들이 대만에 재투자한 돈은 30조 원이 넘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동아시아 주요 나라의 최근 10년 동안 수출 현황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은 수출이 16% 증가하는 사이 대만은 100% 증가했으며, 경제 성장률도 2년 연속 세계 최고를 기록했다.

차이 총통은 반도체 산업 성장에 국가 명운이 달렸다는 점을 강조하며 관련 기업의 요구에 최우선으로 대응했다. 반도체 초격차 유지를 위해 관련 인력이 훨씬 더 많이 필요하다는 업계의 요청을 받아들여 대만 정부는 각 대학이 6개월마다 한 번씩 반도체 전공 신입생을 뽑도록 했다. 이에 대만의 반도체 업계는 해마다 1만 명의 반도체 인재를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차오 지사장은 "정부는 산학협력에 힘을 실어주고 관련 규제를 풀어 기업들이 반도체, 인공지능, 스마트제조 등 첨단 산업 분야에 대한 인재 양성에 적극적으로 뛰어들 수 있는 여건을 만들었다"며 "국립대만대학 등 주요 국립 대학들이 반도체 대학원을 세우고 연중 무휴로 관련 인재들을 배출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안하늘 기자 ahn70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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