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제도가 건강에 주요한 위협이 되고 있다." 오스트리아 철학자 이반 일리치가 1975년 출간한 저서 '의료의 한계'에서 던진 경고다. 항생제, 이식 수술 등 중요한 의학적 발전은 대부분 20세기 초반에 이뤄졌다. 남은 건 노화나 사망 문제지만 연구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현대 의료는 그러나 이를 치료한다는 명목으로 막대한 수익을 거두고 있다. 일리치는 이 같은 과잉 의료 문제를 진단하면서 현대 의료가 건강이 아니라 의료 산업 그 자체를 위해 조직된 제도라고 비판한다.
소화기내과 전문의인 저자는 일리치의 주장을 따라 "치료받아야 할 것은 환자가 아니라 현대 의료"라고 직격한다. 실적이나 상업적 이익만 중시하는 의학 연구, 제약회사와 유착해 새 질병을 만들어내는 의산 복합체, 의료를 소비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소비자주의 등이 고발 대상이다. 수십 년간의 현장 경험과 방대한 연구 자료가 뒤받침됐다.
'병든 의료'를 치료할 수 있을까. 저자의 시각은 암울하다. 수많은 이들이 현대 의료 체계 내에서 기득권을 유지하는 한, 사회적 합의로 개혁을 이루기 어렵다는 것이다. 감염병의 대유행과 이로 인한 경제 붕괴, 기후 재난 등 극단적 사태가 발생해야 그나마 변화의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는 비관적 진단이다. 공교롭게 원서가 발간된 후 코로나 팬데믹이 전 세계를 강타했다. 현대 의료 체계의 문제를 짚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