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전이 벌어진 시리아. 민간 구조대 '화이트 헬멧' 대원들이 전기가 끊긴 곳에서 짧은 휴식을 취하고 있다. 한 대원은 방금 파괴된 건물더미 밑에서 발견한 아이를 살리지 못한 분노를 토로한다. 구호 활동을 하는 것보다 차라리 참전을 해서 적들을 죽이는 것이 무고한 생명을 더 살릴 수 있는 길이 아닐까. 어떠한 이유에서도 폭력이 인간을 구원해주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분노는 사그라들지 않는다.
2011년 시작한 시리아 내전은 2022년 지금까지도 정부군과 반군의 대립이 지속되고 있다. 동일한 신을 섬기면서도 대립된 두 집단은 동족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잔인한 살생을 저지르고 있다. 끔찍한 살인과 반인륜적인 살상무기, 민간인과 어린아이들의 살해 등 내전 기간에 자행된 살육의 풍경은 시리아 국민뿐만 아니라 전 인류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파괴의 잔해 속에 묻혀 있는 인간을 구조하는 화이트 헬멧은 인간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게 하는 유일한 존재다.
연극 '더 헬멧'은 화이트 헬멧의 구조 활동을 중심으로 아내와 아들을 잃은 테러범이 자살테러를 하는 이야기와, 자살 테러의 희생양이 되는 9살 꼬마의 이야기가 동시에 진행된다. 앞서 언급한 화이트 헬멧 대원의 환멸로 시작한 연극은 두 개의 이야기가 나뉘어지면서 서로 다른 공간에서 다른 경험을 하게 한다. 관객이 앉는 객석은 큰 ㄱ(기역), 작은 ㄴ(니은) 형태로 배열되어 있다. 큰 기역과 작은 니은의 객석을 나누는 대각선의 문이 생기면 큰 기역자 빅룸에서는 테러범과 화이트 헬멧의 이야기가, 작은 니은자 스몰 룸에서는 9살 꼬마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벽 너머에서 불명확하게 들려오는 소음은 또 다른 공간의 일을 궁금하게 만드는데 어느 순간 조명을 통해 두 공간이 하나로 연결되면서 극이 진행되기도 한다.
극은 하나의 이야기가 두 개로 갈라졌다 다시 하나로 뭉치며 진행된다. 긴밀하지만 다른 공간에서 두 개의 연극을 동시에 진행하며 서로 다른 믿음과 신념으로 벌어지는 갈등과 그로 인한 순진한 생명의 죽음을 목도하게 한다. '더 헬멧'은 스몰룸과 빅룸 공연을 모두 보아야 온전한 이야기를 제대로 알 수 있지만 하나의 이야기만 보아도 각각 완성된 이야기를 경험할 수 있다. 이러한 형식은 전쟁이라는 끔찍한 참상과 그 한 가운데 있는 사람들의 고민을 좀 더 몰입하며 받아들이게 한다.
연극 '더 헬멧'은 이것이 다가 아니다. 앞서 소개한 2017년 시리아 알레포를 배경으로 하는 '룸알레포'편 외에도, 1987년 민주화 운동이 한창인 서울을 배경으로 하는 '룸서울'편이 별개 공연으로 또 있다. 한 무대에 두 공간을 배치하는 형식은 같다. 스몰룸에서는 백골단에 쫓겨 서점 골방에 숨어든 이날 처음 만난 공격조 데모대 학생들이, 빅룸에는 이들을 숨겨주는 서점 주인과, 수색을 핑계 대며 농땡이를 피우는 백골단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룸알레포'와 '룸서울'을 각각 두 번씩, 총 네 번 감상해야 한다. 내전 중인 시리아와 민주화를 위해 학업을 포기하고 거리로 뛰어든 학생들, 권력의 하수인이 되어 잔인한 진압에 나선 또 다른 젊은이들. 시간과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2017년 시리아와 1987년 서울의 풍경은 전쟁이라는 폭력적인 광풍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나약한 인물들을 보여준다. 부패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무리한 욕망이 불러온 전쟁, 그로 인한 무고한 희생, 이를 멈추기 위해 발버둥치지만 무력함만을 느끼는 시리아의 화이트 헬멧과 자신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권력의 하수인이 되어 폭력을 휘두르는 백골단은 시공간을 축으로 한 데칼코마니 같다. 소극장에서 공간을 나누고 빅룸과 스몰룸을 오가며 연기 변신하는 배우들의 열연이 전쟁의 참혹함을 무겁게 전한다. 8월 7일까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