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재직 시절 성비위로 두 차례 징계성 처분을 받은 윤재순 대통령비서실 총무비서관이 비매품으로 펴낸 그의 첫 시집에서 왜곡된 성인식을 여과 없이 드러낸 것으로 파악됐다. 윤 비서관이 '자신의 내면을 글로 솔직하게 표현한 것'이라고 밝힌 시집에는 성적 욕망이 담긴 심상과 여성에 대한 대상화, 성매매와 유흥업소를 연상케 하는 대목이 곳곳에 등장했다.
1일 한국일보가 윤 비서관이 2001년 발간한 104쪽 분량의 시집 '석양의 찻잔'(아르필)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 시집에는 그의 왜곡된 성인식과 여성관을 보여주는 시가 다수 포함됐다. 이 시집에는 지하철 성추행을 '사내아이들의 자유'로 표현해 논란이 된 '전동차에서' 원문이 실렸다. 비매품과 달리 판매용 시집에는 "요즘은 여성전용칸이라는 법을 만들어 그런 남자아이의 자유도 박탈하여 버렸다나"라는 구절과 부제 '전철칸의 묘미'가 삭제된 사실도 드러났다.
'이십육년간의 토막 살인'이란 제목의 시에는 성매매를 암시하는 듯한 내용이 담겼다. 시에는 "교수대 올가미를 메고 거미줄처럼 늘어선/법원앞 포장마차들을 기웃거려 보다 (중략) 후미진 골목길에 늘어선 몸을 파는 창녀들한테 몸을 맞기어 보다가"라는 구절이 나온다. 그는 이 시를 스물여섯 살이었던 1987년 작성했다고 밝히고 있다. 검찰에 입직한 뒤 곧바로 쓴 자전적 시로 보인다.
유흥업소를 묘사한 시 '스텐드바에서'는 "흥청대는 무리들 속에서 얄팍한 웃음을 덤핑하는 미인들은 누구인가/누가 말하리/누가 그이들에게 비웃음을 조각하리/오직 한가닥 싸디싼 웃음을 사기 위하여/돈을 뿌려대는 무리들에게/그 누가/무의미한 웃음을 조각하리"라는 내용이 담겼다. 여성의 웃음을 빗대 성 상품화를 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밖에 "아카시아의 향기는 아낙네의 하이얀 속치마와 같고/소나무는 검은 자켓과 같음이요/아카시안 허벅지와 같이 넓고 펑퍼짐하고/소나무는 옹달샘의 샘물과 같습니다"(아카시아와 소나무), "임산부의 유방처럼 부풀어오르는 가슴앓이"(석양의 찻잔), "미친이의 살결에 울먹이는 순결처럼 흐트러지는 가슴입니다"(상흔) 등 여성의 신체나 옷차림을 묘사한 문구도 적지 않았다.
윤 비서관은 5·18 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시도 썼다. '이데올로기와 광주'에는 "어느날, 사랑이 이름을 흠모하더니/미칠듯한 사내의 성기(性機)가 드러나고/어렴풋한 그리움이 자유(自由)를 뿌리치더군요", "그저/구멍뚫린 하늘을/멍청하리만치 거만하게 쳐다보며/민주(民主)의 여신(女神)을 기다리는/바보가 되었소" 등의 문구가 담겼다.
그는 시집 끝부분 작가의 말에 "내게 시를 쓴다는 것은 하나의 작품을 이뤄가는 것이 아니라 저 자신의 내면을 글로 솔직하게 표현하고 싶은 마음 그 자체였다"며 "마음 졸여왔던 사춘기에서부터 불혹의 나이에 이를 때까지 일정과 회환을 담았다"고 밝혔다. 다른 시집에선 "스치는 바람과 흐르는 강물에 변모해가는 일상에 나의 인생과 철학과 혼을 담고, 바보같이 가슴 속에만 깊이 감춰뒀던 것을 모조리 토해버리고 싶었다"고 적었다.
한국 문단 내 성폭력을 고발하며 문학계 '미투 운동'을 촉발한 최영미 시인은 윤 비서관의 시에 대해 "비뚤어진 방식으로 성적 욕망을 배출하는 청소년기 자아가 고착된 것으로 보인다"며 "문학적 소양은 조선 시대 과거시험을 봤다면 고을 원님도 되지 못했을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성폭력 예방교육을 맡는 비서관 자리에 성비위 이력이 있는 인물을 둔다는 것은 국격 문제"라고 비판했다.
앞서 윤 비서관은 검찰 재직 시 성비위로 2차례 징계성 처분을 받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당에서도 사퇴 목소리가 잇따랐다. 윤 비서관은 부적절한 신체접촉 등으로 △1996년 10월 '인사조치' △2012년 7월 '감찰본부장 경고' 처분을 받았다. 검찰 내부에선 동료들에게 성희롱성 발언을 일삼아 'EDPS(음담패설의 은어)'로 불렸다는 증언까지 나왔다. (관련기사 : '尹 집사' 윤재순, 검찰서 2차례 성비위…알고도 임명한 듯)
윤 비서관은 지난달 17일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성비위 의혹을 해명하면서 "이른바 '생일빵'에 화가 나 '뽀뽀해주라'고 말한 것은 맞고, 그래서 볼에 하고 갔던 것"이라고 말해 논란을 키웠다. 역대 총무비서관이 재정 총괄 외에 대통령비서실에서 성폭력 예방교육도 담당해왔다는 점에서 윤 비서관이 총무비서관으로서 자격이 없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