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나의 다짐

입력
2022.06.01 00:00
27면

글을 쓴다는 것은 참 쉬운 일이 아니다. 마음이 혼란스러울 때는 더 그렇다. 생각을 정리하고 쓰려니 글이 한 걸음도 나가지 않는다. 결국 폭풍전야 같은 마음 그대로 책상 앞에 앉았다.

미류 활동가가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에 들어갔다. 하루, 이틀, 열흘 그의 단식은 계속되었다. 미류가 계속 신경이 쓰이면서도, 매끼 배꼽시계가 울릴 때마다, 빡센 노동으로 허기진 마음과 몸을 달래기 위해 서둘러 식당으로 달려갔다.

스무 날, 서른 날이 지나도 단식이 끝난다는 소식이 없었다. 미류의 건강이 걱정되었다. 이렇게까지 온 존재를 거는 데도 대답 없는 국회에 화가 났다. '그 사람의 어떠함으로 차별을 하면 안 된다는 법' 하나 만들기가 이렇게 어려워서야 되겠냐는 생각에 속상했다.

단식 서른 날이 지났다. 미류 페이스북에 들어가 보는 일이 잦아졌다. 법 제정도 제정이지만 미류의 건강이 더 걱정되었다. 우리 공동체의 문제 해결을 위해 자신을 던지는 이에 대한 미안함에 마음 한켠이 계속 시큰거렸다. 지금 내가 당연히 여기는 정치적·사회적·경제적 권리들은 각각을 위해 자신을 던진 이들의 희생 덕분에 누리고 있는 거라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나는 차별금지법도 결국엔 제정될 거라고 믿는다. 그것이 옳은 방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랬나? 아직 오지 않았을 뿐, 종국적으로는 올 미래라고 생각해서, 너는 지금 살짝 비켜서 있는 것인가?'라는 질문이 갑자기 훅 들어왔다.

미류의 단식이 왜 신경 쓰였는지 이제 알 것 같다. 그의 단식을 보며 왜 화가 나고 답답했는지 이제 알 것 같다. 검수완박을 통해 봤듯이 마음만 먹으면 단독 입법도 가능하면서, 유독 차별금지법 앞에서는 한없이 무기력하기만 한 민주당에 대한 분노 때문이 아니었다. 46일간의 단식 끝에 겨우 열린 차별금지법(평등법) 국회 공청회에 불참한, 이제는 여당이 된 국민의힘 때문이 아니었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를 나는 다른 이들에게서 찾고 있었는데, 미류의 46일 단식은 정작 나의 양심을 계속 찌르고 있었다.

비켜서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비켜서 있었던 것 같다. 동참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동참을 미래로 유보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일을 해낼 사람들을 찾고 있다는 이유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미뤄 두고 있었던 것 같다.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하는 기독교인으로서, 더 많은 기독교인이 법 제정에 함께할 수 있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해야겠다. 지금을 지금으로 만들 수 있는 실력을 키우기 위해 모인 섀도우캐비닛 멤버들이, 실제 미래를 당길 힘을 가질 수 있도록, 섀도우캐비닛이 할 수 있는 일을 더 열심히 해야겠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민주당과 국민의힘 당원들이 당내에서 더 큰 목소리를 가질 수 있도록 도울 방법을 찾아야겠다. 차별금지법을 지지하는 다수 시민의 목소리가 제대로 대표될 방법을 찾아야겠다. 조직되지 못한 다수는 조직된 소수를 이길 수 없다는 단순한 명제를 마음에 새기고 말이다.

할 일은 많아졌는데 마음은 개운하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어서인 것 같다. 글쓰기의 힘이다. 공동체의 문제에 자신을 건 미류와 종걸, 그리고 수많은 존재들 덕분이다. 이들에게 다시 한번 마음의 빚을 진다. 마음의 빛을 받는다.


김경미 섀도우캐비닛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