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이 병인 양

입력
2022.05.31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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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갑자기 '다정(多情)'이란 단어에 심란했다. 서울 북쪽의 어느 산어귀에서 우연히 이 말이 들어간 간판을 내건 한 전통카페를 만나면서부터다. 그 집의 상호는 '다정이 병인 양'이었다.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 제/일지춘심을 자규야 알랴마는/다정도 병인 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요즘에도 이 시조가 국어 교과서에 실리는지는 모르겠다. 고려말 문신 이조년이 지은 '다정가'다.

정(情)이 많은 게 다정일진대 '정'이란 무엇일까. 사전적 풀이는 '느끼어 일어나는 생각이나 마음, 또는 사랑이나 친근감을 느끼는 마음'이다. '사정(事情)'이나 '물정(物情)'에서처럼 어떤 형편을 말하기도 한다.

'뜻(情)' 자는 마음 '心'과 소리(청→정)를 나타내는 푸를 '靑'이 결합했다. 누구는 '靑' 자에 주목해 마음속에서 변함없이 푸르게 타오르는 순수한 본성으로 해석한다. 아무튼 '情'은 어떤 외부의 자극에 의한 마음의 작용을 통칭한다. 감정, 애정, 연정, 순정, 인정, 동정, 냉정, 역정, 충정, 표정, 정서, 서정, 춘정, 정념, 정열, 색정, 욕정, 통정, 선정…

'情'은 '한(恨)'과 함께 가장 한국적인 정서다. '恨'처럼 영어 표현도 마땅찮다. 'tender', 'kind', 'friendly' 정도가 비슷한 뜻일 건데 우리말 '정답다', '정겹다', '정들다' 같은 말에 비하면 영 정이 안 붙는다.

우리는 어찌 보면 평생을 '정'과 '한'이란 두 글자를 가슴에 안고 살아간다. '정'은 '한'과 다르게 긍정적이고 따스한 느낌이지만 결국은 같은 마음의 뿌리가 아닐까. 정이 넘치면 한이 되고, 정이 없어도 한이 된다. '그놈의 정 때문에' 많이 울고 울었다. '속정'으로 가슴 아렸고, '잔정'으로 안타까웠고, '정나미' 떨어지는 것들로 슬퍼했고,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어 버리지 못했다. 그래서 다정은 백약이 무효인 병(病)인가 보다.

그 이름을 내건 이 집 주인장은 얼마나 다정한 사람일까 궁금했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나를 돌아보며 생각난 시.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너는/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안도현, '너에게 묻는다')

요즘 서점가에서는 다정함의 효과를 다룬 책들이 트렌드라고 한다. 미국의 정신의학자 켈리 하딩이 쓴 '다정함의 과학'이 있다. 그는 환자들과의 수많은 임상을 통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의 비결은 의학이 아니고 살을 맞대는 다정함 같은 지극히 인간적인 것들에 있다는 연구 결과를 소개한다.

미국의 진화인류학자인 브라이언 헤어 등이 쓴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라는 책은 한 걸음 더 나간다. 그에 의하면 다윈은 틀렸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진화의 최종 승자는 적자생존에서 살아남은 자가 아니라 친화력을 가진 다정한 종이었다고 주장한다.

다정함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으로 마지막 봄밤을 뒤척인다. 그래, 산다는 게 결국은 정을 주고받는 일이 아닌가. 이 세상 모든 유정한 것들은 다 다정에 기대어 사는 게 아닐까. 평생 정에 목말라 했다. 누군가에게 한없이 다정하고 싶다. 그도 나를 변함없이 다정하게 대해 주면 좋겠다. 다정에 기대고 싶은 내 마음의 다정이 날 어지럽히는 밤이다. 외롭다. 한밤중 미친놈처럼 편의점에 가서 '초코파이 정'을 한 박스 사오고 말았다.


한기봉 전 언론중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