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법제사법위원장 자리 싸움에서 비롯된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의 신경전으로 국회가 30일부터 '개점 휴업' 상태가 됐다. 양당이 국회를 공전시키면서 21대 국회 후반기(올해 6월부터 2년간)에 본회의 의사봉을 쥘 국회의장 선출도 기약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국회의장이 없으면 국회 인사청문특별위를 구성할 수 없다. 윤석열 정부의 고위 공직자 인사청문 절차 진행이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국회 상임위원장 인선과 상임위원 배치 작업도 중단되면서 법안 심사와 의결도 모두 정지됐다.
박병석 전 국회의장의 2년 임기는 29일 끝났다. "국회의장 임기가 만료되기 5일 전에는 차기 의장과 부의장을 선거로 뽑아야 한다"는 게 국회법 규정이지만, 여야는 이를 지키지 않았다. 다수당인 민주당이 24일 당내 경선을 통해 김진표 의원을 의장 후보로 선출했을 뿐이다.
의장이 없는 국회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일단 공직 후보자에 대한 국회의 공식 검증 업무가 불가능하다. 검증 주체인 인사청문특별위원회를 구성하는 권한이 의장에게 있기 때문이다. 새 장관 후보자가 지명된 교육부와 보건복지부의 장관 공백이 길어질 전망이다.
정부를 감시·견제하는 국회 상임위 기능도 멈췄다. 상임위원들의 임기(2년)가 박 전 의장과 함께 끝났기 때문이다. 원내 교섭단체 대표의 요청을 받아 상임위원을 선임하는 권한을 가진 것도 의장이다. 법안과 일반 안건의 심사·의결도 중지됐다. 30일 현재 국회에 계류돼 있는 법안과 결의안은 1만196개에 달한다.
입법부 공백 사태의 발단은 법사위원장을 사수하기 위한 민주당의 원(院)구성 합의 파기였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6일 21대 국회 후반기 법사위원장을 국민의힘이 맡기로 한 지난해 원구성 합의에 대해 "원점에서 시작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약속을 깼다. 민주당은 "원내지도부가 바뀌었으니 협상을 다시 해야 한다"는 허약한 논리를 댔다.
불똥은 국회의장 선거로 튀었다. 국민의힘은 2년 전 합의대로 민주당이 법사위원장을 양보해야 의장을 선출할 수 있다는 입장이고, 민주당은 먼저 의장을 뽑고 원구성 협상을 하자고 맞서고 있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29일 국민의힘과 추가경정예산안 국회 처리에 합의한 후 "국민의힘이 책임감 있는 집권당이라면 오늘 본회의에서 의장 선출안도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같은 날 당내 의원총회에서 "법사위원장 자리만 약속대로 우리한테 주면 의장을 포함해 후반기 원구성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고 했다.
여야의 입장이 평행선을 그리는 가운데, 국회의 '무정부 상태'가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다만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20대 국회 때인 2018년에도 6·13지방선거를 앞두고 전반기 국회의장의 임기가 끝났다. 당시 야당인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이 가지고 있던 법사위원장 자리를 두고 여야가 충돌했고, 차기 의장이 선출되는 데에만 45일이 소요됐다. 19대 국회에선 전반기 국회의장 임기 종료와 동시에 후반기 의장을 선출했지만, 원구성 합의는 2014년 6·4지방선거 19일 후에야 이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