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에서 또 아바타 간 성폭행 "컨트롤러에서 진동까지 느껴져"

입력
2022.05.31 04:30
지난해 12월 이어 메타 VR 플랫폼서
또 성폭행... 거리두기 기능도 소용없어

차세대 먹거리로 지목된 '메타버스(3차원 가상세계)' 내의 빈번한 성범죄 발생과 관련된 체험 보고서가 공개되면서 파장도 확산되고 있다.

30일 정보기술(IT) 업계에 따르면 미국 비영리단체 '섬 오브 어스'는 최근 익명의 여성 연구원의 체험을 바탕으로 작성된 '메타버스: 중독성 있는 콘텐츠의 또 다른 시궁창' 보고서를 발표했다.

해당 보고서엔 연구원 A씨가 호라이즌 월드를 테스트하면서 경험한 성범죄 관련 내용이 담겼다. 호라이즌 월드는 가상현실(VR) 헤드셋인 오큘러스 기기를 기반으로 메타에서 출시한 소셜 메타버스 플랫폼이다. 2015년 오큘러스를 인수하고, 지난해에는 사명까지 바꾸며 메타버스에 사활을 건 메타가 지난해 12월 출시한 야심작이다. 오큘러스를 착용하고 '호라이즌'이라는 가상현실에서 다른 이용자들과 함께 이벤트에 참여하거나 대화 등의 상호작용을 비롯해 각종 게임 등도 즐길 수 있다. 지난 2월 기준 이용자 30만 명을 돌파하면서 인기몰이 중이다.

보고서와 공개된 영상에 따르면 연구원은 여성 아바타로 호라이즌 월드에 접속한 지 한 시간 만에 성폭행을 당했다. 연구원의 아바타는 메타버스에서 파티를 즐기던 도중 다른 사용자에 의해 한 방으로 끌려갔고, 그곳에서 강제로 성폭행을 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VR 기기를 착용한 탓에 손에 쥔 컨트롤러에서 진동이 느껴졌고, 또 다른 이용자의 아바타는 보드카 술병을 들고 이 장면을 촬영하는 흉내를 내기까지 했다. 연구원은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머릿속이 복잡했다"며 "컨트롤러의 진동으로 혼란스럽고 불편한 물리적 경험도 동반됐다"고 회상했다. 섬 오브 어스는 "이번 사건은 얼마나 빠른 시간 안에 메타버스 플랫폼에서 성범죄에 노출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설명했다.

호라이즌 월드에서 성범죄가 발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지난해 12월 아동을 위한 메타버스 기술 연구 업체인 카부니의 니나 파텔 부사장은 호라이즌 월드에서 경험한 성추행 피해를 온라인에 공유해 논란이 됐다. 이에 메타는 아바타 간 4피트(약 120㎝) '거리두기' 기능을 도입했지만 사용자가 이를 임의로 해제할 수 있는 허점이 있다.

이번 사건의 경우에도 다른 이용자의 설득에 연구원이 거리두기 기능을 설정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메타 측은 "호라이즌 월드는 원치 않는 접촉을 쉽게 피할 수 있도록 안전 기능이 기본으로 설정됐다"며 "모르는 이용자에 대해선 안전 기능을 해제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도 제페토를 비롯한 메타버스상의 성폭력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자, 온라인 성범죄에 대한 처벌 규정을 입법하려는 시도가 나타나고 있다. 최근 민형배 의원(무소속)이 발의한 성폭력범죄처벌법 개정안에 따르면 가상인물이 활동할 수 있도록 제작된 공간에서 성적 행위를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미 로블록스와 제페토, 마인크래프트 등에서도 메타버스 내 성범죄 논란이 급증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과거와 최근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 메타버스 내 성범죄에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승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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