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서 소득 수준이 가장 높은 곳으로 꼽히는 세종특별자치시에서 대체 무슨 말인가 싶었다. 그래서 27일 동세종농협 예양지점 농산물유통센터를 찾았다. '풍문'은 사실이었다. 무진동 트럭에 수박 상자를 싣던 지게차 운전기사는 “요즘 하루 작업량이 60톤에 달한다”며 “이 트럭들은 대부분 서울 양재동으로 간다”고 말했다.
이 수박은 세종시 연동면 특산물 '싱싱세종수박'이다. 세종에서 생산하지만 정작 세종에선 맛보기 힘들다. 과거 충남 연기군과 인근 충북 청원 지역에서 ‘맛찬동이’ 브랜드로 팔리던 수박이지만 10년 전 세종시가 출범하면서 별도 브랜드로 독립했다. 경남 함안 등 남부지방에서 4월 초 출하가 시작되는 봄 수박(조생종)으로, 세종 에선 5월 말에서 6월 초까지 딱 2주간 생산된다.
수박은 중량의 80% 이상이 수분이라 갈증 해소는 물론 100g당 20㎉ 수준의 열량과 풍부한 식이섬유를 갖춰 여름철 과일의 대표 주자로 꼽힌다. 그 수박이 봄에 나오면 진짜 수박인가 싶지만,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는 ‘오말육초’에 출하되는 덕분에 싱싱세종수박의 인기는 전국 봄 수박 중에서도 상종가를 치고 있다. 올해 연동 들판의 비닐하우스 200개동에서 수확한 물량은 7㎏기준 10만 개 규모다. 본격적인 여름으로 접어들기 앞서 전국 소비자가 접하는 수박 가운데 가장 많다.
싱싱세종수박의 인기 비결은 단연 최고 수준의 높은 당도에 있다. 수박은 통상 11브릭스(100g당 당의 농도) 이상일 때 상품성이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곳에선 보다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 11.5브릭스 이상의 수박만 골라 출하한다. 공공선별회(작목반)의 이종철 회장은 “브랜드를 새로 만들어 독립하면서 싱싱세종수박만의 무기가 필요했다”며 “높은 당도의 수박 브랜드로 자리를 잡았고, 요즘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업어가는 수박이 됐다”고 말했다.
실제 이날 오후 비파괴 당도 검사 및 선별기를 통과한 수박 1,300여 통을 지켜본 결과, 11.5브릭스 이하를 기록한 수박은 한 통에 불과했다. 이 회장은 “출하 수박의 35%는 12브릭스 이상의 초고당도 수박”이라며 “다른 곳에선 따로 빼내 비싼 가격에 파는 최고급 상품이지만, 여기선 함께 판매하는 것도 높은 인기 비결”이라고 말했다. 덕분에 출하되는 싱싱세종수박의 평균 당도는 12브릭스에 근접한다.
대부분의 농산물이 그렇듯 인기 비결로는 천혜의 자연환경이 꼽힌다. 연동 들판은 세종 연기면에서 미호천과 금강이 합쳐지기 전에 그 사이에 펼쳐진 땅이다. 지하수가 풍부하고 물 빠짐이 좋은 비옥토라서 수박 등 채소 재배의 최적지로 꼽힌다.
여기에 동세종농협과 농업기술센터가 의욕적으로 진행해온 수박 품질 향상 프로그램도 한몫을 톡톡히 했다. 통상 봄 수박 농사는 2월 20일쯤 종묘를 심어 13~14주 뒤 수확을 시작하고 열흘간의 출하를 통해 한해 농사를 마무리하는 ‘100일 농사’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최고 품질을 위한 노력은 그보다 훨씬 앞서 시작된다. 이 회장은 “가을걷이가 끝나는 대로 각 농가는 산도(pH), 전기전도도(EC), 유기물, 인산, 칼륨, 규산 등의 토양 검사를 받는다"며 "그 검사에서 나온 처방전을 따라 토양의 힘을 키우려고, 농한기 선행 작업에 나선 덕분에 수박이 더 튼튼하고 당도가 높다"고 말했다.
이 같은 노력 덕분에 전체 생산량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다. 고령화로 인해 수박 재배농가가 매년 두세 가구씩 줄고 있는 것에 비하면 괄목할 만한 성과다. 선별장 관계자는 "사전 컨설팅을 통해 수박 당도를 높이다 보니, 전체 불합격률이 낮아진 덕분"이라고 말했다.
세종시는 연동 수박을 조치원 복숭아와 함께 지역 대표작물로 키워 농가소득 향상에 기여할 계획이다. 강영희 동세종농협 조합장은 “기존 거래선을 끊기 어렵고 전국에서 주문이 쇄도하는 와중에 지역 내 학교로 공급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며 "연동 수박을 더 키우기 위해선 고령화한 농촌의 노동력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