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웃겼을 때 오는 극한의 희열이 있어요. 본인이 직접 나서면 코미디언이 되는 거고, 그게 조금 부끄러워서 저처럼 남을 통해 웃기면 코미디 PD가 되는 거죠.(웃음)"
2000년대 초반, '개그콘서트' '웃찾사' 등 코미디 프로그램이 안방극장에서 전성기를 누리던 때가 있었다. 남을 웃길 줄 안다고 소문난 이들은 마치 관문처럼 각 방송사 개그맨 공채 시험을 봤다. 당시 신문방송학과에 다니던 안제민(39) PD도 그중 하나였다. 코미디가 사랑받던 시절 청춘을 보낸 그는 2009년 tvN에 입사해 예능 PD가 됐다. '코미디 빅리그' '콩트 앤 더 시티' 등을 연출하며 10년간 시청자에게 웃음을 주던 그가 지난해 샌드박스네트워크로 이적해 온라인 플랫폼으로 눈을 돌렸다.
"사실 레거시 미디어에 있다 보면 코미디가 죽은 것 같다고 느껴져요. 그런데 유튜브만 들어가면 인기 급상승 동영상에 코미디 콘텐츠가 꼭 두세 개씩은 있는 거예요." 안 PD는 아직 코미디는 살아있는데, 숨어있는 애청층이 많다는 걸 깨달았다. 특히 대중이 비교적 자유로운 유튜브 시장을 중심으로 콘텐츠를 소비하면서, 장르 특성상 제약과 싸워나갈 수밖에 없는 기존 미디어의 코미디가 한계를 부닥친 상황이 왔다는 거다.
그래서 안 PD는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유튜브 등 디지털 플랫폼을 기반으로 도전에 나섰다. "힘이 닿는 한 계속해서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는 욕심도 추진력이 됐다. 그는 샌드박스 제작본부에서 '흥마늘 스튜디오' 같은 유튜브 채널, 크리에이터와의 협업을 통한 자체 콘텐츠 기획에 힘을 쏟고 있다. 이적 후 첫 작품으로는 국내 OTT 왓챠와 손잡고 제작한 신규 예능 '노키득존'을 선보였다.
28일 왓챠에서 공개된 4부작 예능 '노키득존'은 코미디 전문 PD의 경력을 살린 프로그램이다. 대세 방송인 14명이 상금 5,000만 원을 걸고 '웃음 참기' 전쟁에 참여한다. '코미디 빅리그'부터 연을 이어온 이용진 이진호 강재준 이은형 양배차 최우선, 유튜브로 다시 주목받은 이창호 곽범 김해준 이은지, 대세 방송인 가비 강남 랄랄 하승진이 함께했다. 안 PD는 "코미디를 오래 하다 보니 남을 웃기는 데 능력 혹은 의지가 있는 사람이 보인다"며 "14명은 남을 웃기는 방식, 각자의 웃음 포인트가 다르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출연진은 목에 건 '노키득벨'에 불이 켜지면 웃음을 참아야 한다. 시시때때로 웃겨야 하는 자와 웃지 말아야 하는 자를 바꿔가며 변주의 묘미를 뒀다. 출연진은 1박 2일 내내 상금은 뒷전, 시종일관 서로를 웃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OTT에서 공개되는 만큼 TV보다 수위가 자유롭다. 다만 안 PD는 "눈살을 찌푸릴 정도의 수위가 아니다"라며 "코미디 프로그램 녹화 뒤 술자리"처럼 선을 넘지 않고 편안한 모습을 연출하는 데 중점을 뒀다. 안 PD는 "자유롭게 수위를 넘나들 수 있다고 해도 누군가에게 불쾌감을 줘서는 안 되기 때문에 적정선을 지키려고 노력했다"고 덧붙였다.
여전히 현장에선 '이렇게 해도 되냐'고 묻고, 10년 넘게 방송만 해온 안 PD도 매일 아침 몇몇 장면을 떠올리며 '편집할 걸 그랬나' 고민한다. 다만 그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길을 찾아가야 하는 게 제 미션"이라며 "부정적 반응이 있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다음 콘텐츠를 만들 때 자양분으로 삼겠다"고 했다.
"주중의 시름을 잊고 주말엔 웃고 싶은 분들이 '노키득존'을 즐기고, 다양한 반응을 보여주셨으면 좋겠어요. 새로운 길을 개척한다는 건 위험을 감수한다는 뜻과도 일맥상통하니까요. 무(無)플보단 악플이 낫다는 말처럼 여러 반응이 제겐 나침반이 되리라 믿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