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 모둠 그리고 모듬

입력
2022.05.2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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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람들이 모인다. 세 번의 봄을 지내는 동안 겪었던 일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 방수지 위에서는 따로따로 뒹굴던 물방울이 결국 한곳으로 합쳐지듯, 사람이 모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어떤 목적을 두고 여러 사람이 모이는 일을 '모임'이라고 하지만, '모임이 있는 날', '동창들의 모임' 등의 쓰임을 보면 '모임'이란 특별한 목적이 없어도 충분히 가치롭다.

그중에서도 작은 규모로 묶은 모임을 '모둠'이라고 한다. 모둠은 초·중등학교에서, 효율적인 학습을 위해 학생들을 묶은 단위다. 이미 '모둠 학습, 모둠 수업, 모둠 토의, 모둠 활동, 모둠장, 모둠원' 등 사례가 다양하다. 학교에서 활동을 하면서 그룹 활동, 그룹장, 리더, 멤버 등과 같이 남의 말을 빌려 쓰던 때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그룹' 대신에 잘 정착된 '모둠'에 박수를 보낸다.

돌아보면 '모둠'이 쓰이는 곳은 많다. 정원 한옆에 동그랗게 만든 꽃밭을 보았는가? 키가 큰 화초를 중앙에 심고 밖으로 가면서 점차 키가 작은 화초를 심어 꾸민 꽃밭을 '모둠꽃밭'이라고 한다. 냄비에 국물을 많이 넣고, 해산물이나 야채 등을 넣어 끓이면서 먹는 일본식 요리는 '모둠냄비'이다. 농촌에서 품앗이 일꾼들을 모두 먹일 밥은 '모둠밥'이고, 가지런히 같은 자리에 발을 붙이고 모은 것은 '모둠발'이다. 종종 간판과 메뉴에서 모듬전, 모듬회도 보이는데, 이는 '모둠전', '모둠회'를 잘못 적은 것이다.

대구·경북지역으로 이사를 온 이들은 지역 공동체의 말에 낯설어 하는데, 그중 하나가 '계추'이다. '계(契)'란 친목 도모나 경제적 도움을 주고받기 위해 만든 협동 조직이다. 여기에다가 한국 사람들은 흔히 '모임'을 한 번 더 붙여 '계모임'이라 부르고, 대구·경북권에서는 '모이다(聚)'란 한자를 하나 더 붙여 계추, 기추, 지추 등으로 부른다. 계모임이든, 계추든 같은 말을 두 번씩 붙이면서까지 모임을 강조한 모양새가 재미있다. 가운데가 높은 '모둠꽃밭'은 사방 어디에서 봐도 잘 어울리는 것이 초점이란다. 큰 함지박에 담은 '모둠밥'은 내 것, 네 것 할 것 없이 같이 먹는 데 그 뜻이 있다. 모둠이 가치로운 까닭은 그 말 속에 어울림과 나눔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막혔던 모임이 자유로워질 때지만, 모임의 제값을 위해 우리는 모임의 원래 가치와 의미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미향 영남대 국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