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고뇌하던 그 방... 청와대 관저 들어가보니

입력
2022.05.30 12:00



2007년 1월 12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청와대 관저에서 우리 근로자들의 나이지리아 납치 사건과 관련한 보고를 받았다. 조속한 석방을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라고 지시했지만, 납치 단체의 실체조차 명확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손으로 미간을 짚고 고뇌에 빠진 모습에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업무가 이어지는 대통령의 일상을 엿볼 수 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이 머문 곳은 외부 인사를 초청해 접견하거나 오찬 또는 만찬을 하는 관저 내 대식당이었다. 창가 쪽에 커다란 원탁이, 벽 쪽으론 10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소파가 자리잡고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은 이 소파에 앉아 전화 보고를 받았다.

청와대는 과거 역대 대통령들이 관저에서 활동하는 모습을 언론에 간간이 공개해 왔는데, 사진에 나타난 공간은 대부분 대식당이나 소회의실이었다. 대식당에서는 주로 식사를 겸한 회동을, 소회의실에선 참모진과 현안을 논의했다.





1997년 12월 29일 김영삼 전 대통령은 당시 대통령 당선인 신분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을 관저로 초청해 대식당에서 부부동반 만찬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기각된 2004년 5월 14일 대통령 직무대행직을 수행한 고건 당시 국무총리를 대식당으로 초청해 만찬회동을 했고, 2008년 2월 18일 이명박 당시 당선인을 초청해 식사를 함께한 장소도 대식당이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 역시 이곳 대식당에서 2018년 새해 의인으로 선정된 시민들과 함께 등반한 뒤 떡국 조찬을, 모친상 직후인 2019년 11월 10일엔 조문에 감사하는 뜻으로 여야 5당 대표를 초청해 저녁을 대접하기도 했다.

25일 언론에 공개된 청와대 관저 내부는 침대나 테이블 등 가구 일부가 치워져 휑했다. 이 곳 대식당도 원형 식탁은 물론, 소파도 치워진 채 텅 비어 있었다. 전통문양인 격자형 창틀만이 화합과 협치를 실천하던 공간의 의미를 증언하고 있을 뿐이다.

대식당과 함께 언론에 자주 등장한 소회의실은 관저 내 집무실과 같은 성격을 띄었다. 이곳에서 대통령은 참모들과 각종 현안을 논의하거나 각국 정상들과 전화 통화를 했다. 2000년 6월 김대중 전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으로 향하기 전 날 이 방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문 전 대통령은 이 방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시진핑 중국 주석,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 등과 전화회담을 하는 등 외교안보 업무를 주로 처리했다. 문 전 대통령 임기 초기 원탁이었던 회의용 테이블은 이후 직사각형으로 바뀌었다.




이 밖에 역대 대통령들이 새해를 맞아 참모들과 새해 인사를 나누던 방을 비롯해 거실과 침실, 락커룸처럼 보이는 드레스룸, 욕실, 사우나실, 샹들리에가 달린 주방, 머리를 자르고 감고 메이크업을 할 수 있는 방까지 이날 한꺼번에 공개됐다. 거실에는 사용하던 소파와 TV가 남아 있었지만, 대부분 방에서 가구가 빠진 터라 관저 내부는 전체적으로 썰렁했다. 문 전 대통령이 키우던 반려묘의 밥그릇이 복도에 그대로 남아 눈에 띄었다.



청와대가 74년 만에 개방된 가운데 관저에 대한 관심이 특히 뜨겁다. 관저는 청와대 경내에서도 가장 폐쇄적인 공간이었고, 그 동안 일반에 알려진 것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비록 건물 밖에서 창문을 통해 관람해야 하지만, 26일 이후 관저 앞에는 '인간' 대통령의 흔적을 더듬어보려는 시민들의 대기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대통령실과 문화재청은 지난 10일 청와대 경내를 개방하면서 본관과 관저 등 건물 내부 출입을 금지했다. 그러나 내부 관람 희망자가 많아지자 23일 영빈관과 춘추관 내부를 개방한데 이어 본관과 관저 내부를 일반에 개방했다. 청와대 누적 관람 신청자는 개방 이주일 만인 24일 0시 기준 543만 명을 넘어섰다.














홍인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