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혜민의 B:TS] '뮤직뱅크', 그들만의 리그가 되지 않으려면

입력
2022.05.30 10:29


편집자주

[홍혜민의 B:TS]는 'Behind The Song'의 약자로, 국내외 가요계의 깊숙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전해 드립니다.

데뷔 채 한 달도 되지 않은 신인 그룹 르세라핌이 가수 임영웅을 꺾고 음악 방송 1위에 올랐다. 물론 데뷔 연차가 인기를 가늠하는 척도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최근 첫 정규 발매 당일 밀리언셀러를 가뿐히 넘으며 여느 대형 아이돌 그룹 못지 않은 화력을 입증한 임영웅을 제치고 이제 갓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걸그룹이 1위를 꿰찼다는 것은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결과다.

팬 뿐만 아니라 대중까지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 이번 사태는 지난 13일 방송된 KBS2 '뮤직뱅크'에서 일어났다. 당시 방송에서 임영웅과 함께 오른 르세라핌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1위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당시 임영웅은 디지털 음원 점수, 음반 점수에서 압도적인 점수로 르세라핌을 이겼지만 방송 횟수 점수에서 0점을 받으며 르세라핌에게 1위를 내줘야 했다. 반면 당시 르세라핌의 방송 횟수 점수는 5,000점을 훌쩍 넘었다.

해당 방송이 끝난 직후 해당 점수 집계 방식에 대한 해명 요구가 빗발쳤다. 이미 오래 전부터 일명 '방점(방송점수)' 채점 기준에 대한 팬들의 분만이 이어져 온 가운데 임영웅과 르세라핌의 사태가 불을 지핀 것이다. KBS 시청자권익센터에는 '뮤직뱅크 순위 기준을 밝혀달라'는 청원이 등장해 1,000명 이상이 동의를 했으며 한 시청자는 국민신문고를 통해 경찰청에 수사를 의뢰하기도 했다.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된 논란 속 KBS 예능센터 한동규 CP는 시청자권익센터에 게재된 청원글에 직접 입장을 밝혔다. 한 CP는 문제가 된 방송 횟수 점수 채점 방식에 대해 "지난 2일부터 8일까지 집계 대상인 KBS TV, 라디오, 디지털 콘텐츠에 임영웅의 곡 '다시 만날 수 있을까'가 방송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 CP의 해명에도 '뮤직뱅크' 순위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한 CP가 언급한 기간 동안 '임백천의 백 뮤직' '설레는 밤 이윤정입니다' '김혜영과 함께' 등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까'가 방송되었다는 주장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뮤직뱅크' 측은 "방송 점수 중 라디오 부문은 KBS 쿨FM의 7개 프로그램을 대상으로 집계하고 있다. 해당 7개 프로그램 이외의 프로그램은 집계 대상이 아니"라는 추가 해명을 덧붙였다. 하지만 끝내 제대로 된 점수 집계 기준이나 대상 프로그램 등은 공개되지 않은 탓에 의혹은 명쾌하게 해소되지 않았다.

'뮤직뱅크'에 대한 경찰 조사도 본격화됐다. 지난 28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영등포 경찰서는 임영웅의 방송 점수 0점 논란에 대한 고발장, 진정서를 접수해 담당과에 사건을 배정했다. 향후 경찰은 범죄행위 성립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법령 검토 및 고발인 및 진정인 등에 대한 조사도 시작할 방침이다. 그야말로 첩첩산중인 셈이다.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 고려 않은 '방점' 기준, 변화가 필요하다

'뮤직뱅크'를 둘러싼 논란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논란의 시작은 임영웅과 르세라핌의 순위 집계에서 비롯됐지만 여전히 투명하지 않은 '뮤직뱅크' 측의 해명 속 팬들은 이제 방송 횟수 점수 반영의 필요성에 대한 의문까지 제기하고 있다.

팬들의 의문처럼 사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뮤직뱅크'가 고수하고 있는 '방점' 시스템에 있다.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 속 TV나 라디오 방송에서의 플레이 횟수가 과연 해당 가수의 인기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라고 말할 수 있을까. K팝 시장의 글로벌 인기 속 국내 음악 방송을 시청하는 시청자들 역시 세계화 되고 있지만, 자사의 방송 횟수(게다가 내부적으로 정했다는 '일부' 프로그램에서의 방송 횟수만을 포함한)만을 채점 기준에 포함시켜 현실과는 괴리가 있는 순위를 산출하는 방식은 편협하게 느껴진다.

'뮤직뱅크'가 지금의 논란을 진화하고 보다 공신력 있는 순위 시스템으로 진화하기 위해선 방송 횟수 점수 대신 전반적인 음악 트렌드를 반영할 수 있는 새로운 지표의 도입이 필요하다. 이번 사태 이후에도 (실효성마저 떨어지는) 방송 횟수 점수를 고집하는 것은 '뮤직뱅크'를 자신들만의 리그로 전락시키는 셈이라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한편 이날 '뮤직뱅크' 측 관계자는 "점수 집계 방식을 개편할 계획이나 논의가 이루어 진 적이 있냐"는 본지의 질문에 "아직까지 해당 논의를 하기엔 시기상조"라는 짧은 답을 전했다.

홍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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