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더불어민주당의 6·1 지방선거 선거대책위 비공개 회의장에서 고성이 흘러나왔다. 회의 참석자들이 다투는 소리였다. 싸움의 전선은 1996년생인 박지현 공동비상대책위원장 1명 대 86세대(80년대 학번ㆍ1960년대생) 출신 당 지도부 소속 의원 다수. 민주당 관계자가 전한 말싸움의 요지는 이렇다.
▷윤호중 공동비상대책위원장: (책상을 쾅 내리치며) "(박 위원장은) 지도부 자격이 없다. 오늘 비대위 회의 안 하겠다."
▷박홍근 원내대표: "여기가 (박 위원장) 개인으로 있는 자리가 아니지 않나."
▷전해철 의원: "(박 위원장은) 앞으로 지도부와 상의를 하고 발언을 하면 좋겠다."
▷박지현 위원장: "그럼 저를 왜 여기에 앉혀 놓으셨나."
대선 패배 이후 민주당은 한동안 박 위원장을 '쇄신의 아이콘'으로 떠받들었다. 당 서열 1위인 공동비대위원장에 임명했다. 박 위원장은 왜 약 3개월 만에 집단 질책을 당하는 처지가 됐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당 주류인 '86세대의 퇴진'을 거푸 요구했기 때문이다.
박 위원장은 25일 언론에 공개된 선대위 모두발언에서 이렇게 말했다. “2022년 대한민국 정치의 목표는 86 정치인들이 상상도 못했던 격차, 차별, 불평등을 극복하는 것이다. 86세대의 남은 역할은 2030세대 청년들이 이런 이슈를 해결하고 더 젊은 민주당을 만들 수 있게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민주당 강경파가 감싸는 최강욱 의원의 성희롱 의혹에 대해서도 박 위원장은 25일 ‘무관용 원칙’을 재확인했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극렬 지지층의 문자폭탄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 비대위 비상징계 권한을 발동해서라도 최 의원 징계 절차를 마무리하겠다”고 했다.
박 위원장의 '직언'에 86 당사자인 회의 참석자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일부 참석자들은 한숨을 쉬거나 박 위원장을 노려봤다고 한다.
박 위원장은 24일에도 지방선거 참패 위기에 몰린 민주당의 과오를 대표로 사과하는 기자회견을 하면서 86세대 정치인들의 퇴진, 그들이 방패처럼 활용한 팬덤 정치와의 결별을 주장했다. “개인 의견이다”(윤호중 위원장) “틀린 자세와 방식이다”(김민석 선대위 총괄본부장) 등 공개적인 '훈계'를 듣고도 박 위원장은 물러서지 않은 것이다.
박 위원장은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에 합류, 2040세대 여성 유권자들을 이재명 전 대선후보에게 결집시키는 데 기여했다. 정파적 이해와 거리를 둔 채 상식과 민의에 부합하는 '바른말'을 거침없이 하는 모습이 화제가 됐고, 힘 있는 미래 정치인으로 부상했다. 검수완박 입법 과정에서 민형배 전 민주당 의원이 ‘위장 탈당’을 하자 “편법을 관행으로 만든 것”이라고 꼬집었고, 차별금지법 입법이 지지부진한 것을 두고 “15년 전 공약으로 내세운 것도 민주당, 15년 동안 방치한 것도 민주당”이라며 반성문을 썼다.
박 위원장은 그러나 최근 고립무원 처지가 됐다. 그를 발탁해 비대위원장 타이틀을 달아 준 당 지도부 가운데 그를 옹호하는 목소리는 없다. 민주당 지도부 관계자는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박 위원장이 돌출 행동을 해 민주당 의원들을 ‘반성을 모르는 정치인’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민주당 주류가 허락하는 쇄신만 말하라"는 게 최근 박 위원장에게 쏟아지는 공격의 요지인 셈이다. 다만 당 지도부 관계자는 “박 위원장과 윤 위원장은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어서 입장을 낼 때는 서로 상의해야 한다”며 “박 위원장이 상의를 하지 않아 절차적 문제를 제기한 것”이라고 했다.
박 위원장은 강경하다. 25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에서 “어떤 난관에도 당 쇄신과 정치개혁을 위해 흔들림 없이 가겠다”며 “좀 시끄러울지라도 달라질 민주당을 위한 진통이라 생각하고 널리 양해해 달라”고 했다.
소수의 지지 목소리도 나왔다. 박용진 민주당 의원은 SNS에서 “박 위원장의 옆에 함께 서겠다. 박 위원장의 솔직하고 직선적인 사과가 울림이 있었으리라 본다”고 했다. 양이원영 의원은 “박 위원장의 문제가 아니라 듣기 싫은 얘기를 들을 수밖에 없는 우리의 상황이 문제”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