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블루스' 영희 엄마 "장애인 가정의 비극...저도 생각했었다"

입력
2022.05.25 13:00
장차현실 경기장애인부모연대 양평지회장
다운증후군 딸 드라마 데뷔...다음 달 영화도 개봉
"장애인 가족, '불행' 증명해야 국가가 지원"
"장애인 독립 생계 가능하게 제도 개선해야"


tvN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속 영옥(한지민)의 '그 사람'이 베일을 벗었다. 육지에서 제주로 온 1년차 해녀 영옥과 매일 밤 전화 통화를 하며 온갖 소문을 냈던 주인공은 영옥의 쌍둥이 언니인 다운증후군 영희. 드라마 설정보다 놀라운 건 이 역할을 실제 다운증후군 배우가 맡았다는 사실이다. 2014년부터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한 정은혜씨로 고두심, 김혜자 같은 '대배우'들과 나란히 앉아 안정감 있는 연기를 선보였다.

정씨의 어머니 장차현실씨는 25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드라마에 나오는 영희는 그냥 은혜 같았다"고 말했다. 노희경 작가가 정씨를 1년간 만나며 관찰한 결과다. '이제는 됐다'는 확신이 섰을 때 대본 집필에 들어갔다는 제작진의 설명처럼 어머니 장씨는 "(딸이) 그림을 그린다든지 이런 모습을 그대로 드라마 속에 녹여낸 것 같다"고 설명했다. 영희가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려고 가는 차 안에서 신촌블루스의 '골목길'을 부르며 뜨개질을 하는 설정도 딸 정씨가 평소 좋아하는 것들이다.

정은혜씨는 2014년부터 캐리커처를 그려온 화가다. 서울문화재단 잠실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로 경기 양평의 문호리 리버마켓에서 2016년부터 초상화를 그렸다. 노희경 작가를 포함해 4,000여 명의 얼굴을 그렸고, 유튜브 채널 '니얼굴 은혜씨'에서 일상을 공개하고 있다. 다음 달에는 정씨를 담은 다큐멘터리 '니얼굴'도 개봉한다.

'지금은 웃으면서 흐뭇하게 얘기하지만 여기까지 오는 데 참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다'는 진행자 말에 장씨는 "작년부터 올해까지 거의 20건 정도 그런 일(장애인 가족의 극단적 선택)들이 있었는데, 전혀 남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딸의 장애로 삶이 너무 어려울 때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었다"는 말이다. 발달장애 아동을 돌보는 가족의 비극은 끊이지 않고 있다. 3월에는 중증 발달장애인 20대 딸을 숨지게 하고 자신도 죽으려고 한 엄마가 재판에 넘겨졌다. 23일에는 발달장애인 아동과 40대 엄마가 서울 아파트 화단에 추락한 채 발견됐다.


장애인 가족 '돌봄' 지원은 생존의 문제


장씨도 만화 '또리네집'을 낸 작가다. 다운증후군 딸을 키우는 일상을 담았다. 그는 "이 사회를 살면서 계속 드는 생각은 '불행은 개인의 문제'라는 것"이라며 "특수 교육에 돈과 시간이 많이 들었지만, 막상 청년이 되니까 지역사회에 갈 데가 없더라"고 말했다. 이어 "점점 퇴행이 오기 시작하면서 여러 가지 틱이 생기고 시선강박증, 조현병까지 왔다. 저도 그걸 바라보면서 가벼운 뇌졸중이 왔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장씨는 국가 지원을 기대해보려고 하면 "굉장히 굴욕적인 상황이 늘 있었다"며 "아이의 못남을 피력해야 하고, 불행을 면사무소 같은 공개된 장소에서 얘기해야 한다. 연거푸 하다 보면 위축된다"고 말했다. 이어 "결국 권리의 문제는 예산(이 관건)"이라며 "돌봄과 노동의 문제 해결이 가장 시급하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가 차원의 발달장애인 지원 대책과 권리 보장 등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크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장애인의 날'을 하루 앞둔 지난달 19일 청와대 인근에서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 구축'을 촉구하며 삭발식을 진행했다. △낮 시간 활동 지원 서비스 개편 및 확대 △지원주택 도입 및 주거지원 인력 배치 △공공의료 지원체계 구축 등을 해달라는 요구다.

장씨도 경기장애인부모연대 양평지회장을 맡고 있다. 그는 "저도 다 큰 딸과 한집에 살고 싶지 않다"며 "이 사람(장애인)이 지역 사회에서 시설에 가지 않고, 가족이 사는 지역 가까이에서 혼자 독립해 살기 위해서는 24시간 지원체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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