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고백으로 시작한다. 선거를 분석하고 관련한 논문을 쓰고 강의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주일여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에 대해서 아무런 감흥이 들지 않는다. 서울시장 후보 정도를 제외하면, 솔직히 내가 살고 있는 지역구에 어떤 후보가 어떤 공약을 걸고 출마했는지도 잘 모르겠다. 물론 선거에 불참할 생각은 없어서 일주일 후 7장의 투표용지를 받아 어느 칸엔가 도장을 찍겠지만, 아마도 생소한 이름들 사이에서 배회하다가 소속 정당을 내비게이션 삼아 목적지를 찾게 될 것이다.
돌이켜보면 4년 전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그때도 기억나지 않는 누군가에게 투표했었고, 그렇게 누군지 알지 못하는 사람이 4년 동안 나를 대표해왔다. 특별히 불만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지금의 지방의원, 단체장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가 그 자리에 있었다고 해서 내 삶이 크게 달라졌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어차피 지방정부 차원에서 실질적인 정책이 결정되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이런 점이 대선이나 총선과 다른 지방선거의 장점인지도 모르겠다. 큰 고민 없이 편한 마음으로 선거에 참여할 수 있고, 결과에 대해서도 큰 걱정이나 기대 없이 쿨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딱 그 정도의 정치이벤트. 도대체 우리는 왜 이런 일을 4년마다 반복하는 걸까? 도대체 지방선거는 왜 실시하는 걸까?
물론 이론적으로야 지방선거의 의미와 중요성을 얼마든지 길게 나열할 수 있다. 그러나 공허한 말의 성찬으로는 우리가 현실에서 경험하는 지방선거의 모습을 가릴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지방선거를 중앙정치의 대리전 정도로 만들어버린, 결과적으로 지방정치를 중앙정치에 예속시켜버린, 주요 정당과 정치인들을 비판한다. 또 다른 사람들은 후보와 쟁점 나아가 선거 자체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는, 그러다 보니 정당만 보고 소위 '묻지마 투표'에 나서는 유권자들을 나무란다. 그러나 정말로 이들만의 책임일까?
대한민국에 17개 광역자치단체와 226개의 기초자치단체가 존재한다. 그중 어느 곳은 대도시 지역에 자리 잡고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들고 나는 반면에, 다른 곳에서는 60대가 청년회장으로 한적한 농촌 마을을 이끌어 간다. 어느 곳은 치솟는 부동산 가격 때문에 주거 불안을 걱정하지만, 또 다른 곳은 출생률 저하로 인한 지역소멸을 걱정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지방자치제도는 이 모든 곳들에 똑같은 형태의 정치를 강요하며, 똑같은 정당의 후보들이 매 선거마다 명함만 바꾸어가며 경쟁한다. 지역마다 고유한 걱정거리와 이슈가 존재하지만, 이러한 다양성은 기껏해야 두세 개 남짓의 정당에 의해서만 대표 될 수밖에 없다. 그나마 그 두세 개 남짓의 정당은 4년 내내 여의도와 용산만 쳐다보고 있는데도 말이다.
결국 정당과 유권자가 지금과 다르게 행동할 동기를 제공하지 못하는 지방정치의 구조 자체가 문제이다. 지역의 다양성에 상응하는 지방정치의 다양한 구조가 제공되고, 다양한 구조하에서 지역별로 서로 다른 고민과 정책을 토론하는 지역 정당이 경쟁을 벌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유권자도 누가 '우리 지역'의 문제를 잘 해결할까에 관심을 가질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지방선거는 4년 뒤에도 풀뿌리 민주주의의 기초는커녕 그저 비싸기만 한 허울뿐인 정치이벤트로 남아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