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 속에 들지 않으면 못 견디는 사람들

입력
2022.05.2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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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5 랠프 왈도 에머슨

미국 '건국의 아버지'는 조지 워싱턴(1732~1799)이지만, 미국의 종교와 철학, 세계관을 유럽 교회와 지성사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게 한 '아버지'로는 랠프 왈도 에머슨(1803.5.25~ 1882.4.27)이 꼽힌다.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의 개신교 목사 집안에서 태어나 하버드대 신학부를 졸업하고, 유니테리언 교회 목사로 공적인 삶을 시작한 그는 정통 기독교의 교리·형식 중심의 신앙을 부정하며 인간의 내재적 자율성과 영혼의 초월적 힘에서 종교 가치의 본질을 찾았다. 그의 도전적 신학은 기존 교회로부터 배척당했고, 그는 불과 3년 만에 스스로 교회를 떠났다.

이후 유럽 여러 나라를 돌며 사상가, 문학인들과 교유하며 시대정신을 탐구했고, 동양철학을 익히며 기독교적 세계관과 청교도주의의 대안을 모색했다. 그의 철학은 흔히 범신론적 초월주의로 분류되지만, 그 바탕에는 개인주의와 인본주의, 특히 약자(의 권리)에 대한 옹호와 긍정이 깔려 있다. 사상(가)도 유행을 좇아, 근년에는 에머슨의 책을 찾아 읽는 이는 드물고 다만 삶의 지혜를 담은 그의 어록들이 간간이 인용되는 형편이고, 대신 성공한 기업가나 투자자들이 대접받는 시대지만 에머슨은 21세기의 가치를 선취한 혁명적 사상가이자 우리 시대의 스승이다.

그는 다수의 철학, 문학 저서 못지않게 기념비적인 강연으로 당대 미국 지식인을 일깨웠다. 올리브 웬델 홈즈(Sr.)가 1884가 출간한 에머슨 전기에서 '미국의 지적 독립선언문'이라 평한 에머슨의 1837년 케임브리지대(하버드대 전신) 강연, 즉 '미국의 학자'의 키워드로 단 하나만 꼽으라면 '개인(주체)'이었다. 학자가 갖춰야 할 최대 덕목을 그는 지적 자유와 권위에 맞설 수 있는 용기라 했고, 시대의 반가운 징후로 '개인'의 중시와 "가장 낮은 계층으로 불렸던 사람들"에 대한 문화의 주목을 꼽았다. 그는 "독립된 개인이 되지 못하는 것,(...) 그러면서 전체 안에서만, 즉 우리가 속한 정당이나 분파의 수백 수천의 사람들 속에서만 존재를 인정받는 것"을 "세상에서 가장 수치스러운 불명예"라고 역설했다.

최윤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