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축구연맹(FIFA)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골을 넣은 선수에게 수여하는 푸슈카시상을 손흥민이 거머쥐었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팬들은 그것이 그의 정점인 줄 알았다. 2019년 12월 열린 2019~20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16라운드 번리전, 자기 진영 페널티 라인에서 공을 잡은 손흥민은 홀로 수비수 6명을 제치고 약 70m를 질주해 골을 터뜨렸고, 전 세계의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번리전 원더골은 '월드클래스' 손흥민을 전 세계에 각인시킨 시작점에 불과했다. 이듬해인 2020~21시즌에도 손흥민은 역대급 활약을 이어갔다. 리그에서만 17골, 유럽대항전 등을 포함해 22골을 터뜨리며 자신의 한 시즌 최다 골 기록을 모두 새로 썼다. 차범근 전 국가대표팀 감독이 1985~86시즌 레버쿠젠 소속으로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세운 한국 축구 선수의 유럽 정규리그 한 시즌 최다 골(17골) 기록과도 어깨를 나란히 했다. 도움도 10개나 올리며 골과 도움 모두 그 시즌 EPL 4위에 올랐다.
이번 시즌은 녹록지 않았다. 높아진 기대감 때문인지 영국 내에서 '위기론'이 따라다녔다. 한 경기라도 부진하면 가혹한 평가가 내려졌다. 감독과의 공식 기자회견에서 "손흥민을 선발에서 제외할 생각은 없냐"는 질문이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손흥민은 비판을 받을수록 더 단단해졌다. 그리고 높은 기대 이상의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지난해 8월 맨체스터 시티와의 개막전(토트넘 1-0 승)부터 득점포를 가동한 손흥민은 올 시즌 팀의 해결사 노릇을 제대로 했다. 시즌 초반 해리 케인이 부진하고 팀 감독이 교체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을 때도 손흥민은 흔들리지 않았다. 안토니오 콘테 감독 체제가 자리 잡으면서 팀의 경기력이 올라온 마지막 10경기에선 총 12골을 몰아치며 에이스임을 증명했다.
올 시즌 손흥민은 부상 3경기를 제외한 35경기에 모두 선발 출전해 총 3,019분을 소화했다. EPL 20개 팀 공격수를 통틀어 4번째로 출전 시간이 많다. 이 경기에서 14차례 '킹 오브 더 매치'에 선정되며 EPL 최다 수상의 영광을 안았고, 영국 스포츠 매체 스카이 스포츠가 산정하는 파워랭킹에서도 시즌 누적 순위 1위(37라운드 기준)를 지켰다.
특히 손흥민은 지난 시즌 자신의 기록(17골)을 훌쩍 넘은 23골을 터뜨리며 유럽 5대 리그(잉글랜드·스페인·독일·프랑스·이탈리아) 유일의 아시아 득점왕이 됐다. 아시아 선수의 유럽 1부 리그 최다득점 기록도 갈아치웠다. 직전 기록은 이란 출신 알리레자 자한바크시(페예노르트 로테르담)가 2017~18시즌 네덜란드에서 만든 21골이었다.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파 콘퍼런스리그에서 작성한 1골 1도움을 더하면 이번 시즌 공식전 기록은 45경기 24골 8도움이다.
이제 남은 손흥민의 도전은 우승컵이다. 어느새 프로 13년 차에 접어든 손흥민이지만 아직 소속팀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린 적은 없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게 그의 유일한 우승 경험이다.
전망은 희망적이다. 콘테 감독 아래 토트넘은 더 단단한 팀으로 변화하며 EPL 빅4다운 면모를 갖췄다. 다니엘 레비 회장은 이번 이적시장에서 부족한 포지션의 보강을 약속했다. 3년 만에 나서는 '별들의 전쟁'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CL)에서 손흥민이 어떤 활약을 보여줄지도 관심사다.
이밖에 손흥민은 EPL 통산 100골 기록을 남겨 뒀다. 7시즌 동안 EPL 232경기에서 93골을 넣은 손흥민은 7골만 더하면 통산 100골을 돌파한다. 또 손흥민과 케인 모두 토트넘에 남는다면 EPL 역대 통산 최다 합작 골 기록도 이어갈 수 있다. 리그 최고의 호흡을 자랑하는 '손케 듀오'는 EPL 통산 최다인 41골을 합작해 프랭크 램퍼드-드로그바 듀오(36골)를 뛰어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