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격 능력’이라는 눈속임

입력
2022.05.24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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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23일 미일정상회담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일본의 방위력 강화 논의의 진척 상황을 설명했다. 앞서 지난달 말 자민당 안보조사회는 5년 내 방위비를 국내총생산(GDP)의 2%까지 늘리고 ‘적 기지 공격능력’ 명칭을 ‘반격 능력’으로 바꿔 보유하자고 정부에 제안했다.

일본에 방위력 강화를 요구해 온 미국엔 반가운 얘기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일본 여론도 방위력 강화에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방위력 강화가 안보 환경 변화로 부득이하다는 주장을 인정하더라도, 적 기지 공격 능력을 이름만 바꿔 보유하자는 주장의 문제점까지 간과할 순 없다.

적 기지 공격 능력이란 상대국이 미사일로 공격하기 직전, 그 발사대나 기지 등을 공격하는 원거리 타격 수단을 갖추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공격받기 전에 타격하는 것은 헌법 9조에 근거한 전수방위 원칙에 위배되는 ‘선제 공격’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먼저 공격한다’는 본질은 두고 이름만 바꿔 논란을 피하자는 것이다. 한술 더 떠 공격 대상에 적군의 지휘 통제 기능까지 포함하자고 했다.

우크라이나가 지난 2월 러시아가 곧 침공할 것이 확실하고 미사일 발사 징후에 관한 정보까지 얻었다고 가정해 보자. 이때 러시아군의 미사일 발사대나 기지, 혹은 ‘지휘 통제’를 하는 국방부나 크렘린궁을 공격한다면 이걸 ‘반격’이라 부를 수 있을까. 상대측에 “우크라이나가 선제 공격을 했다”는 침공 명분만 제공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국제사회가 지금처럼 “일방적인 러시아의 잘못이고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겠다”고 뜻을 모을 수 있을까.

최근 요미우리신문 여론조사를 보면, 일본 국민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안보 환경 변화에 따라 헌법개정에 찬성하는 여론이 절반을 넘었다. 그러나 전쟁을 금한 9조 1항의 개정에는 80%가 반대했다. 자위대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일본이 먼저 전쟁을 시작한 과거 잘못은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름만 바꿔 논란을 피해 보자는 자민당의 제안은 주변국뿐 아니라 자국 국민도 우습게 아는 기만에 지나지 않는다.

도쿄= 최진주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