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계승은 절반만."
21일 발표된 한미정상회담 공동성명에는 문재인 정부가 합의한 2018년 판문점선언과 북미 싱가포르 공동성명이 담기지 않았다. ‘인도ㆍ태평양 전략’을 여러 차례 강조한 대목에서는 전 정부 신(新)남방정책을 사실상 폐기하겠다는 의중이 묻어난다. 1년 만에 다시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선 이처럼 정부 교체에 따른 변화도 곳곳에서 감지됐다.
공동성명에 판문점선언과 싱가포르 공동성명이 포함될지는 이번 회담의 주요 관전 포인트 중 하나였다. 두 합의는 한미 공히 전임 정부 시절 이뤄진 것이라 재언급될 경우 “합의를 계승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6월 문 전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의 한미정상회담 때만 해도,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공동성명 등 기존 남북간, 북미간 약속에 기초한 외교와 대화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정착을 이루는 데 필수적”이라는 내용이 들어갔다.
반면 이번 회담에서는 문구 자체가 성명에서 빠졌다. “양국 정상은 북한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상의 의무 및 기존 약속과 합의를 준수할 것을 촉구했다”는 부분이 과거를 끌어들인 전부다. 한 외교 소식통은 “지향점도 다른 전임 정부의 성과를 굳이 부각할 필요를 못 느꼈을 것”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지만, 정치적 의도도 있을 것이란 의견이 적지 않다. 실제 윤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부터 판문점 선언 등 문재인 정부의 남북 합의를 “형평성에 문제가 있는 정치적 선언”이라고 비판했다.
물론 새 정부가 과거의 모든 합의를 전면 부정하는 건 아니다. 이번 공동성명에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공동의 목표를 재확인했다”고 적시됐는데, 지난해 성명 내용과 같다. 그간 새 정부에서 “북한의 비핵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 등 북한에 보다 강한 책임을 요구하는 표현을 썼던 점을 감안하면 미국 측 의견이 반영돼 다소 순화된 것으로 보인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판문점 선언 등 표현을 빼면서도 비핵화 목표를 유지한 것은, 어쨌든 완전한 단절은 지양하겠다는 태도”라고 해석했다.
새 정부 출범의 영향은 또 있다. “한국만의 인도ㆍ태평양 전략 프레임워크를 수립겠다”는 계획이 대표적이다. 동남아시아와 인도에 치우친 문재인 정부의 신남방정책을 폐기하고, 아시아 전체를 아우르는 새 ‘외교 독트린’을 구상하는 윤석열 정부의 의지가 숨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