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처조카들로부터 '논문 표절 피해'를 당했다고 밝힌 미국 대학교수가 "조카들 논문은 애초 진행하지도 않은 연구를 한 것처럼 속인 정황이 충분하다"며 "심각히 부도덕한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한동훈 장관 처조카들은 현재 아이비리그(미국 동부의 유명 사립대학)에 속하는 펜실베이니아대에 재학 중이며, 고교생인 한 장관의 딸과도 비교과 활동 이력이 상당 부분 겹쳐 이들이 부적절한 '스펙 공동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표절 대상으로 지목된 논문은 이상원 뉴멕시코 주립대 교수가 2018년 발행한 '시위 참여에서 소셜 미디어의 역할: 한국의 촛불시위 사례 (The Role of Social Media in Protest Participation: The Case of Candlelight Vigils in South Korea)'라는 논문이다. 한 장관 처조카들은 고교 재학 중이던 2021년 이 교수 논문과 유사한 주제를 다룬 '시위에서 SNS의 역할과 영향에 대한 연구: 2016년 한국 촛불집회 사례와 파이썬을 이용한 데이터 시각화(Study of the Role and Impact of SNS in Protests: The Case of Candlelight Vigil of 2016 in South Korea with Data Visualization Using Python)'라는 글을 썼는데, 이 논문은 이달 17일 학술지에서 철회됐다.
이 교수는 19일과 20일 한국일보와 전화 인터뷰에서 한 장관 처조카들의 표절이 단순한 '문장 베끼기' 수준이 아니란 점을 강조했다. 그는 "시위 참여자 관련 데이터를 이용한 연구였기에 한 장관 조카들이 어떻게 표본을 모았는지 살펴봤다"며 "나와 비슷한 시기, 똑같은 설문업체에 300명 조사를 의뢰해 그중 100명의 데이터를 활용했다고 적어놨다"고 말했다. 이 교수의 2018년 연구 표본은 932명으로, 한 장관 조카들 논문과는 3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이 교수는 "샘플 사이즈가 다른데 평균과 표준편차 등 각종 통계치는 소수점까지 똑같이 나왔다"며 "표절을 넘어 연구 자체를 진행한 게 맞는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논문 완성도가 현저히 떨어진다는 점도 연구를 실제로 수행했는지 의심스러운 대목이라고 이 교수는 지적한다. 그는 "내 연구의 가설들과, 이를 검증하기 위해 측정한 변인들을 그대로 베껴놓고 막상 검증은 하지도 않았다"며 "결과(Results) 섹션엔 가설과 관련 없는 조악한 표들만 몇 개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가설과 변인들을) 일단 베끼긴 했지만 막상 검증하는 방식을 모르니 당연한 결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교수는 "종합적으로 판단해보면, 그저 흥미로운 주제의 페이퍼를 다 긁어와 문장과 숫자 일부만 바꿨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또 "단순히 문장 표현을 베끼는 것과, 모으지도 않은 데이터를 모은 척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라며 "연구 자체를 조작했다면 매우 부도덕한 사안이므로 소명하고 싶다면 원 데이터를 공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일보 취재 결과 한 장관의 처조카들이 고교 시절 쓴 논문은 현재까지 확인된 것만 최소 7편이고, 이 가운데 현재 학술지에서 철회된 논문은 4편이다. 이중 이달 11일 철회된 자폐 스펙트럼 관련 논문의 경우 학술지 측이 "일부는 문장을 통으로 베껴 문서화된 사기(fraud)에 가깝고, 저작권 침해에 해당한다"며 철회 이유를 명시했다.
한동훈 장관은 앞서 국회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스펙 공동체' 및 논문 표절 논란과 관련해 "딸이 별도로 등재한 논문들의 경우 누구나 돈을 내면 올릴 수 있는 학술지에 습작을 아카이빙(저장)한 것이며, 입시에 사용할 계획도 없다"고 답했다.
이 교수는 한 장관의 해명을 두고 "논문과 오픈 액세스 저널의 의미를 왜곡하는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아무리 문턱이 낮은 학술지라도, 연구물이 심사를 거쳐 등재된 후엔 늘 인용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논문 저자는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며 "학계 구성원들이 볼 수 있는 공간에 연구물을 올려놓고 문제가 제기되자 '논문이 아니었다'거나 '학술지 수준이 낮다'고 해명하는 건, 군소 인터넷 매체에 왜곡 보도를 올려놓고 '누가 이런 기사를 보겠냐'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한 장관이 돈 문제를 거론하며 학계 성과물을 폄하한 것 역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오픈 액세스 저널은 누구나 돈을 내면 글을 올릴 수 있다는 게 본질이 아니다. 기관 밖 연구원들이나 대중들에게도 학계 성과물을 공유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라고 밝혔다. 그는 "어떤 학술지든 간에 게재된 이상 학계 구성원들이 지식 창출의 근거로 인용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며 "저작물 수준을 거론하며 논문을 논문이 아닌 것처럼 해명하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