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로 아프리카에서 보고됐던 희소 감염병 ‘원숭이두창’이 유럽과 미국, 호주에서 잇따라 발견돼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치명률은 1% 수준으로 낮고 전파력도 강하지 않지만, 감염 경로가 불확실한 탓에 각국 보건당국은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19일(현지시간) 미국 CNN 방송에 따르면 전날 미국 매사추세츠주(州)에서 원숭이두창에 감염된 사례가 1건 확인됐다. 지난해 아프리카 나이지리아를 다녀온 여행객 2명이 확진된 후 처음이다. 이 환자는 최근 개인 차량을 이용해 캐나다를 여행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캐나다 보건당국도 확진자 2명을 보고한 데 이어 감염 의심 환자 17명을 조사하고 있다.
유럽에선 이미 감염자가 30명을 훌쩍 넘었다. 이달 6일 처음 확진 사례가 나온 영국에서는 2주 만에 환자가 9명으로 늘었다. 첫 환자는 지난달 나이지리아를 방문하고 귀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이지리아는 원숭이두창이 풍토병으로 자리 잡은 나라다.
스페인에서는 19일까지 7명, 포르투갈에선 14명이 확진됐다. 감염 의심 사례도 각각 22명, 20명에 달해 환자 수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이탈리아와 스웨덴에서도 이날 각각 1명씩 확진자가 보고됐다. 이탈리아 감염자는 최근 스페인령 카나리아 제도를 여행하고 돌아왔으며 로마의 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20일에는 프랑스에서 1명, 벨기에에서 2명이 나왔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호주도 20일 처음으로 원숭이두창 감염 환자 2명을 발견했다. 1명은 유럽에서 돌아오고 며칠 뒤 증상이 나타나 가족 및 접촉자들과 함께 자택에서 격리 중이다. 다른 1명은 영국에서 돌아온 여행자다. 영국 보건안전청은 “최근 유럽 각국 확진 사례를 종합해 보면 이미 원숭이두창이 지역사회에 퍼졌을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고 말했다.
원숭이두창은 1958년 실험실 원숭이에서 처음 발견돼 이런 이름이 붙었다. 감염 매개체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설치류 동물이 관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간 감염 사례는 1970년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처음 확인됐다. 초기 증상은 발열, 오한, 두통, 피로감, 임파선염 등 독감과 유사하고, 이후에는 입 안과 손바닥, 발바닥, 얼굴, 몸 전체에 광범위한 발진이 나타난다. 수포에 딱지가 생기면 낫기 시작하는데 회복까지 통상 2, 3주가 걸린다.
사람 간 감염은 주로 호흡기 비말, 신체 접촉, 오염된 천이나 물건 공유 등을 통해 이뤄진다. 하지만 전파력이 강하지는 않아서 바이러스가 옮겨가려면 ‘장시간 대면 접촉’이 필요하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에 따르면 치명률은 1%로, 일반적인 가정용 소독제로도 치료가 가능하다.
주로 아프리카에서 발견되는 이 병이 유럽으로 건너간 데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규제 완화로 세계 여행이 재개된 것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마이클 헤드 영국 사우샘프턴대 국제보건학 수석 연구원은 “선진국에서 감염 사례가 많이 나오는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며 “다만 코로나19 수준으로 확산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