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제42주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엔 보수 세력도 '총집결'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5·18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후 보수정권에서 여당인 국민의힘과 정부, 대통령실 인사들이 대거 기념식에 참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를 피로써 지켜낸 오월의 정신"이라며 유가족들과 손을 맞잡고 '임을 위한 행진곡'도 제창했습니다.
의미 있는 변화지만 야당은 마냥 환영하지만은 않는 분위기입니다. 한 예로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공동비대위원장은 기념식 참석을 환영하면서도 "말이 아닌 실천으로 광주의 진실을 밝히고 광주의 정신을 계승하는 일에 동참해 주시길 바란다"고 '뼈 있는 당부'를 남겼습니다.
정부·여당 인사들의 과거 5·18 발언도 문제 삼고 있습니다. 김한정 민주당 의원은 지난 19일 추가경정예산안 심사를 위해 열린 국회 예산결산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 "5·18이 폭동이라고 주장한 사람이 공직에 있어서 되겠나"고 물었는데요. 이는 장성민 대통령실 정책조정기획관을 겨냥한 질문이었습니다.
장 기획관은 2013년 자신이 진행하던 TV조선 시사프로그램 '장성민의 시사탱크'에서 패널의 '5·18 북한군 개입설 주장'을 여과 없이 50분 동안 내보냈다가 뭇매를 맞습니다.
북한 특수부대 장교로 복무하다 탈북한 임천용씨는 "600명 규모의 북한 1개 대대가 광주에 침투했다. 전남도청을 점령한 것은 북한 게릴라"라고 주장했고, 이는 고스란히 전파를 탔는데요. 이 사건으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TV조선에 대해 '경고 및 관계자 징계'를 의결합니다.
장 기획관은 논란이 일자 TV조선 타 방송을 통해 사과했습니다. 그는 "임씨와 함께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단체 인사들을 초빙해 임씨 주장에 신빙성이 있는지 규명하려 했으나 출연에 응하지 않아 한쪽의 주장이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모양새가 됐다"고 해명했습니다.
또 '장 기획관이 북한군 개입설을 동조하는 듯이 진행했다'는 주장에는 "저로서는 프로그램 진행과정에서 임씨 주장의 근거를 밝히려고 노력했으나 취지대로 전달되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죠.
장 기획관은 2000년 5·18 20주년 전야제 날 광주 도심에서 여종업원이 동석한 술판을 벌여 비판받기도 했습니다. 장 기획관은 당시 새천년민주당(더불어민주당의 전신) 국회의원 당선인 신분이었는데요. 술자리엔 송영길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김민석·우상호 의원, 이종걸 전 의원 등 당시 '386'으로 불렸던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도 참석했습니다. 그래서 더 거센 비난을 받았죠.
이들은 "방탕하게 놀지 않았다", "지탄받을 분위기는 아니었다"며 알려진 내용이 사실과는 다른 측면이 있다고 해명했습니다. 장 기획관도 "잠시 들렀으나 일정 때문에 자리를 떴다"고 밝혔죠.
여당 인사 중 5·18로 가장 큰 물의를 빚은 인물은 김진태 국민의힘 강원지사 후보입니다. 박주민 의원은 앞선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국민의힘의 진정성을 믿을 수 없는 이유로 김 후보도 함께 지목했습니다.
김 후보는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의원 시절이었던 2019년 2월 이종명 당시 의원과 함께 국회에서 '5·18 진상규명 대국민 공청회'를 주최합니다. 여기엔 5·18 북한 특수부대 개입설을 꾸준히 주장하고 있는 보수 논객 지만원씨가 발표자로 초청됩니다.
지씨는 그 자리에서 "5·18은 북한 특수군 600명이 일으킨 게릴라 전쟁이고 광주의 영웅들은 이른바 북한군에 부역한 부나비들", "전두환은 영웅"이라고 주장합니다. 공동 주최자인 이 의원은 "폭동이 10년, 20년 뒤 민주화 운동으로 변질됐다"고 했고요, 김순례 의원은 "종북 좌파들이 판을 치며 5·18 유공자라는 괴물집단을 만들어내며 세금을 축내고 있다"고 주장했죠.
김 후보는 당시 지역 일정으로 불참했으나 "5·18 문제에서만큼은 우리 우파가 결코 물러서선 안 된다"고 지씨 주장에 맞장구를 치는 듯한 영상 축전을 보냅니다. 그는 "제일 존경하는 지만원 박사와 제일 좋아하는 이종명 의원이 손을 맞잡고 했기에 성황리에 끝날 것으로 기대한다"고도 말했죠.
이 사건으로 김 후보는 이 의원, 김 의원과 함께 '자유한국당 5·18 망언 3인방'으로 불리게 됩니다.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되는 것은 물론 "제명하라"는 요구도 빗발쳤죠.
비슷한 시기 김 후보는 "5·18 진상조사위원 자유한국당 추천 몫으로 지씨를 추천해야 한다"고 옹호하기도 했습니다. "(북한군 개입설에 대해) 가장 많이 연구하고 제일 잘 알고 있는 분"이라면서요. 김 후보는 검찰총장 후보자 시절 5·18과 신군부의 내란 목적 비상계엄 확대조치인 5·17을 헷갈린 서면답변서를 냈다가 질타를 받은 전례도 있습니다.
김 후보는 이 사건으로 6·1지방선거 강원지사 공천에서 배제(컷오프)됐었는데요. 김 후보가 단식 농성을 하며 항의하는 등 잡음이 이어지자,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는 지난달 18일 '대국민 사과'를 전제로 경선 참여를 허가합니다.
그는 곧장 기자회견을 열고 "북한군 개입설 관련 5·18 공청회를 제가 공동주최한 것은 맞다. 공청회 포스터에도 북한군 개입설이 명기돼 있다. 그러니 그 행사에서 나온 일부 국민정서와 동떨어진 발언에 대해 제가 책임져야 한다"며 "국민 앞에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고 했습니다. "다시는 5·18의 본질을 훼손하는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고요. 결국 그는 황상무 전 KBS 앵커를 제치고 국민의힘 강원지사 후보로 선출됩니다.
그러나 김진태 의원의 사과에 대해 "아직은 미흡하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조진태 5·18 기념재단 상임이사는 18일 YTN라디오 '뉴스킹 박지훈입니다'와 인터뷰에서 "그 정도 사과 가지고 광주 시민들과 국민들이 마음을 열지는 않을 거다"고 평가했습니다. "선거가 끝난 뒤에도 더 적극적인 의지 표명이 필요하다"고도 말했죠.
조 이사는 '5·18을 둘러싼 학문적 논쟁이 시작되기도 전에 대통령이 앞장서는 건 조급하다'는 국민의힘 일부 의견에도 우려를 표했습니다. 그는 이날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학문적으로 토론하자고 하면 받아들일 수 있겠나"고 반문했죠.
그러나 "윤 대통령께서 분명한 태도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소수이면서 사라질 의견이라고 본다"는 희망을 덧붙였습니다.
조 이사의 바람대로 국민의힘은 현재까진 '5·18 망언' 세력과 결별을 꾀하는 듯합니다. 21일 김은혜 경기지사 후보 선거대책위원회는 신광조 국민희망본부 선거전략특보를 해촉했다고 밝혔습니다. 김 후보 선대위 관계자는 "신 전 특보의 글이 우리 당의 가치, 나아갈 방향과 배치되는 데다 국민 정서도 고려했다"고 해촉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신 전 특보는 전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광주 전일빌딩 탄흔은 시민군 유탄의 흔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전일빌딩은 5·18 당시 옛 전남도청 일대에서 가장 높았던 건물입니다. 2016년 10층 안팎에서 탄흔이 다수 발견되며 계엄군의 헬기 사격 가능성이 제기된 곳입니다.
그는 해임 소식이 알려진 이후에도 "헬기사격을 찰떡같이 믿고 있는 광주사람들에게 '이지메(집단 따돌림)' 당하고, 북한군이 침투했다고 콩떡같이 믿는자들에게 '이중간첩' 소리 듣는다. 세상 살기 힘들다"며 주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