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언어에 능수능란해지면 관용구나 속담도 잘 구사한다. 한국어를 매우 잘해서 인기도 많이 끄는 프랑스 출신 유명 연예인이 한국 영주권을 취득했음을 알리는 동영상을 보면 한국어 관용구, 속담, 사자성어 등이 현란하게 나온다. 웬만한 한국인도 그렇게 말하기는 어려울 텐데 미리 대본도 작성했겠지만 말솜씨가 돋보이는 걸 넘어 한국(어) 사랑이 참으로 진실하다는 것까지 느껴진다.
'행복이란 삼복 날에 대구에서 먹는 아이스크림과 같다, 출입국 사무소 갈 때마다 밥이 안 넘어간다, 다크서클이 지하 14층까지 내려왔다' 등등 말씨의 꾸밈새가 다소 화려해서 오히려 왠지 프랑스적이지만, 달콤한 말맛으로 한국(어) 사랑을 표현한 것이겠다. 물론 외국어가 서툰 사람이 관용구나 멋들어진 비유만 외워서 잘하는 것처럼 보이려다가는, 괜히 상대방이 어려운 말을 빨리 할지도 모르니 주의해야 한다.
한국에서 통하는 가짜 사르트르 명언 '인생은 B와 D 사이의 C다(Life is C[Choice] between B[Birth] and D[Death])'까지 인용하는 바람에 더더욱 눈에 띄었는데, 스스로 그걸 인식하고도 한국식 속담처럼 말했을지도 모르겠다. 정말 한국사람 다 됐구나 싶었다. 프랑스 철학자 사르트르가 저런 한국식 영어를 말했을 리는 없으나, 가만 보면 이런 인용구는 일종의 속담으로 치면 된다. 원래 속담이란 누가 처음 말했는지 모르는 채로 퍼지며, 다시 번역 내지 언어 접촉을 통해 딴 여러 언어에도 퍼진다.
출처나 어원을 밝히는 게 연구자나 애호가에게야 의미가 있지만 사람들의 입과 손가락에서 끊임없이 돌아다니는 말들의 뿌리를 누구나 일일이 캘 필요는 없다. 21세기부터 주로 한국 사이트나 신문기사, 책에서 종종 나오므로 영어가 섞인 한국 속담으로 여기면 된다.
'Choice between Birth and Death'는 탄생과 죽음 중 양자택일하라는 이상한 느낌도 든다. 좀 더 영어답게는 'Life is about making choices from birth to death'라고 하면 되겠다. 살면서 선택은 여러 번 할 테니 복수 choices를 쓴다. 혹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고른다(choices from the cradle to the grave)'로 하면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온갖 선택을 하는 여정의 비유도 되고, 요람과 무덤을 고르는 행위를 일컬을 수도 있겠다.
프랑스어로도 C(선택: choix 슈와)와 B(요람: berceau 베르소)까지는 끼워 맞춰진다. 인생은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선택이다(La vie, c'est de faire des choix du berceau à la tombe). D도 décès(사망: 데세)가 있다. '요람'과 '사망'은 대응이 어색해도, BCD가 되려면 '요람에서 사망까지(du berceau au décès)'라고 할 수도 있겠다.
BCD에 얽매이지 말고 프랑스어 chose(쇼즈: 물건, 것, 일)의 복수 choses를 넣어 '요람에서 무덤까지 이것저것 하는 게 인생이다(La vie, c'est de faire des choses du berceau à la tombe)'로 바꾸면 선택의 폭도 훨씬 넓어질 것이다. 그런데 한국어는 문법상 단복수 개념이 없으니 한국식 영어 속담에 choice라 해도 우리는 융통성 있게 여러 번 선택을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