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보수 정권 대통령 중 처음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불과 3개월 전, 광주를 방문한 윤 대통령의 길목을 막아섰던 5·18 민주화운동 유족들과 손을 맞잡은 채였다.
윤 대통령은 18일 오전 9시 50분 광주 국립5·18민주묘지 정문 '민주의 문' 앞에 도착했다. 김범태 국립5·18민주묘지관리소장을 비롯해 박해숙 5·18유족회장, 황일봉 5·18부상자회장, 임종수 5·18공로자회장 등 5·18 관련 단체장들과 악수를 한 뒤 이들과 함께 '민주의 문'을 지났다.
'민주의 문'은 추모탑과 참배광장, 묘역 등으로 들어서는 관문으로, 참배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적인 시설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7년 '민주의 문'을 통과해 기념식에 참석했지만,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은 경호 등의 이유로 차량을 타고 기념식장에 바로 입장했다. 보수 정권 대통령 가운데 윤 대통령이 처음 '민주의 문'을 지난 것이다. '전두환 옹호 발언' 이후 광주시민들과 5·18 단체들이 윤 대통령의 참배를 거부해 추념탑 앞까지 나아가지 못했던 지난 2월과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윤 대통령은 방명록에 "오월의 정신이 우리 국민을 단결하게 하고 위기와 도전에서 우리를 지켜줄 것입니다"라고 적은 뒤 참배 대기실에서 5·18 단체 인사 및 유족들과 비공개 환담을 가졌다. 윤 대통령은 "5·18 기념식에 매년 참석하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기념식의 하이라이트는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이었다. 윤 대통령은 양옆에 선 5·18 단체장 및 유족들과 맞잡은 손을 앞뒤로 흔들며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마스크를 써서 입 모양이 드러나진 않았지만, 마스크가 연신 들썩였다.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역시 보수 정권 대통령으로는 처음이다. 이명박·박근혜 전 정부 시절엔 합창단만 노래를 부르도록, '제창'에서 '합창'으로 격을 낮췄었다.
제창엔 여야가 따로 없었다. 박지현·윤호중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 여영국 정의당 대표 등 야권 정치인은 물론, 이준석 대표와 권성동 원내대표, 정진석 국회부의장 등 국민의힘 인사들도 제창했다. 국민의힘은 소속 의원들에게 '임을 위한 행진곡' 악보를 미리 돌렸다고 전해진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롯한 국무위원들도 나란히 서서 제창했다.
윤 대통령은 광주로 향하면서 헬기가 아닌 KTX 특별열차를 이용했다. 국민의힘 의원과 대통령실 참모진, 국무위원들에게 기념식 참석을 당부한 만큼, 다 함께 이동하며 소통하는 스킨십의 기회로 삼은 것이다. 윤 대통령은 열차에 오른 뒤 객차를 돌며 의원들과 인사를 나눴고, 국민의힘 호남동행단 소속 의원 7명과 아침 식사를 함께했다. 이후 국무위원들을 만나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치느라 수고했다"고 격려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의 '총동원령'으로 이날 5·18 기념식은 보수진영 인사 최다 참석 기록을 썼다. 국민의힘 의원 107명 중 99명이 참석했다. 국무위원 중에선 전날 임명된 한동훈 법무부·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을 포함해 전원이 참석했다. 대통령실에선 김용현 경호처장과 이진복 정무수석 등도 동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