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18일 "자유민주주의를 피로써 지켜낸 오월의 정신은 국민 통합의 주춧돌"이라고 밝혔다. 광주 5·18 민주화운동 정신 계승을 강조한 동시에 보수 정권에서의 '호남 홀대' 우려를 불식하면서 '통합'을 강조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광주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42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우리는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피로써 지켜낸 오월의 항거를 기억하고 있다"며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는 국민을 하나로 묶는 통합의 철학"이라고 밝혔다. 지난 10일 취임사에서 '통합'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점을 의식한 듯, 이날 6분 분량의 기념사에서는 통합을 두 차례 거론했다.
기념사를 관통하는 열쇠 말은 '오월 정신'이었다. 오월 정신이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이란 가치를 담고 있다고 규정하면서다. 윤 대통령은 "오월 정신은 보편적 가치의 회복이고, 자유민주주의 헌법 정신 그 자체"라고도 정의했다. 다만 대선후보 시절 공약이었던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에 대해선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다.
또 "오월의 정신은 지금도 자유와 인권을 위협하는 일체의 불법 행위에 대해 강력하게 저항할 것을 우리에게 명령하고 있다"며 "오월 정신이 담고 있는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가 세계 속으로 널리 퍼져 나가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기념사에서 '자유'라는 표현이 12차례로 가장 많이 언급됐다는 점은 '자유'를 35차례 언급한 취임사와 내용상 일맥상통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윤 대통령은 "우리 모두가 자유와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당당하게 누릴 수 있어야 한다"며 "그 누구의 자유와 인권이 침해되는 것도 방치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군사 독재에 저항한 5·18 정신이 자유라는 보편적 가치와 연결된다는 점을 부각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또 "광주와 호남이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 위에 담대한 경제적 성취를 꽃피워야 한다"며 "인공지능(AI)과 첨단기술 기반의 산업 고도화를 이루고 힘차게 도약해야 한다"고 지역 경제 발전을 강조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기념사 말미에 "자유와 정의, 그리고 진실을 사랑하는 우리 대한민국 국민 모두는 광주 시민"이란 문구를 즉석에서 추가했다. 1963년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의 독일 베를린 연설에서 따온 내용이다. 당시 케네디 대통령은 냉전의 상징인 베를린 시청 앞 연설에서 "모든 자유인은 그들이 어디에 살든지 베를린의 시민입니다. 나는 베를린 시민입니다(Ich bin ein Berliner)"라며 베를린 시민들에게 용기를 북돋웠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기념사를 직접 썼다"며 "어떻게 하면 5월 광주의 슬픔을 위로하고 아픔을 치유할 것인가를 고민했다"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초고를 직접 쓴 이후 7차례나 퇴고를 반복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념식에는 윤 대통령을 비롯해 국무위원과 대통령실은 물론 여야 의원들이 총집결했다. 윤 대통령은 국민의힘 의원(107명) 전원에게 참석을 요청했으나, 코로나19 증세를 보인 의원 등을 제외한 99명이 참석했다. 내각에선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한동훈 법무부 장관 등이 참석했다. 5·18 민주화운동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이후 보수정권에서 여당과 정부, 대통령실 인사들이 대거 기념식에 참석한 것은 처음이다. 윤 대통령은 '임을 위한 행진곡'도 유가족들과 손을 맞잡고 제창했다.
여야는 이 같은 변화에 환영하면서도 다소 온도차를 보였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저희가 오늘 선택한 변화는 다시는 과거로 돌아가지 않는 불가역적 변화였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공동비대위원장은 윤석열 정부 인사들의 참석을 환영하면서도 "앞으로 말이 아닌 실천으로 광주의 진실을 밝히고 광주의 정신을 계승하는 일에 동참해주시길 바란다"고 뼈 있는 당부'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