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증권거래위원회가 지난해 승인한 새로운 지침에 따라 나스닥 상장기업은 이사회에 최소 여성 1명, 소수인종이나 성소수자 1명을 포함해야 한다. 이사진의 다양성 통계 공개도 필수다. 이 가이드라인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이유를 설명해야 하고 합당하지 않으면 퇴출될 수도 있다. 언뜻 다양성에 대한 관심이 높은 미국 사회의 유난한 소수자 배려로 들리지만 그것만이 이유가 아니다. 최초의 여성 나스닥 최고경영자인 아데나 프리드먼은 “이사회 구성의 다양성은 기업 지배구조 개선 및 재무 성과와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기업 내 다양성이 풍부할수록 생산성이 높고 혁신적인 성과를 낸다는 연구 결과가 적지 않다. 남성이나 여성 어느 한쪽 일색인 기업이 남녀 반반 구성으로 바뀌었을 때 수익이 42% 늘어났다는 조사가 있다. 성, 인종, 성적 지향 등 타고난 다양성에다 여러 문화에 대한 이해가 몸에 밴 직원들이 많은 기업은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는 상식에 부합한다. 조직 구성이 다양할수록 고정관념의 벽은 낮고 과제에 다각적으로 접근할 수 있어 문제해결 능력이 높아진다.
기업마저 다양성을 강제받는 세상에 온갖 이해와 갈등을 조정할 정부야 말해 뭐 하겠나. 하지만 오직 능력만 보겠다던 새 정부의 인사는 이런 추세와 어울리지 않는다. 생산성 높고 창의력 넘치는 국정 운영을 기대하며 인재를 물색했을 테지만 안타깝게도 예상되는 결과는 정반대다.
새 정부 인사를 여성과 청년이 안 보인다며 ‘서오남’(서울대 50대 남성) ‘경육남’(경상도 60대 남성)으로 요약한다. 더 인상적인 것은 대통령 주변의 검사들, 정부 곳곳에 진출한 기획재정부 출신들, 외교 라인을 장악한 미국통들이다.
검찰 시절 손발 맞추던 부하들이 대통령실 총무, 인사, 공직기강 등 보직을 도맡았다. 일사불란한 것 말고 얼마나 다양하고 창의적인 운영이 될는지 의문이다. 없어진 민정수석실 역할까지 할 법무부 지휘부도 검찰 핵심 측근이다. 입 벙긋하지 않아도 대통령 의중이 반영될 구조에서 검찰 인사가 그의 총장 시절 특수부 중용 시즌 2가 된 건 이상할 게 없다.
총리 후보부터 경제부총리, 대통령 비서실장, 경제수석에다 차관급만 8명이 기재부 출신이다. 서로 밀고 끌어주며 영향력을 행사해 ‘모피아’라는 오명을 사는 이들에게 날개라도 달아주려는 건가.
외교장관, 안보실장, 국정원장은 물론 차관과 차장까지 미국 전문가인 것은 외교의 최대 과제가 미국과의 새로운 관계 설정쯤이어야 이해될 인사다. 미국의 중국 고립화 정책 앞에서 대중 관계를 어떻게 만들어 갈지가 우리 외교의 최대 고민이다. 그런데도 중국을 잘 아는 정치인이나 관료의 전진 배치는 없었고, 취임 전 미국, 일본에 보낸 정책협의대표단을 중국에는 아예 보내지도 않았다. 미국마저 고개를 갸우뚱한다는 “한미 동맹 재건”에 여전히 꽂혀 있는 건 아닌지 궁금하다.
소위 ‘엘리트’ 일색의 내각과 새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애타게 외친 자유는 과연 어떤 조합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너무 당연한 이야기라서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는 통합의 가치에 이번 내각 인사는 얼마나 어울리는 것일까.
지난해 출범한 바이든 정부는 미국 역대 어느 정부보다 통합과 다양성이 두드러진 내각 인사를 했다. 장관의 거의 절반이 여성이고 과반이 소수인종이었다. 쿠바 이민자가 국토안보장관이 됐고 230여 년 만에 여성 재무장관이 탄생했다. 인사의 이유를 바이든은 “배경과 관점의 다양성 없이 새로운 순간 큰 도전에 맞설 수 없다”고 설명했다. 며칠 전 시정연설에서 우리가 엄중한 위기와 도전에 직면해 있다고 강조하던 윤 대통령이 오버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