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이 18일 밝힌 윤석열 정부 첫 한미정상회담 의제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신흥안보와 전통안보, 다자와 양자를 아우르는 안보 공조의 재정립’이다. 새 정부는 일찌감치 선언한 양국의 ‘포괄적 전략동맹’의 근거 논리로 ‘기술동맹’ 개념을 끌어들이기도 했다. 인도ㆍ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한미 외교ㆍ국방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 등 실현 수단도 다수 논의된다. 하지만 미중갈등 고조, 북한 핵ㆍ미사일 위협 및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등 안보 위협 요소가 중첩돼 있는 만큼, 미국에 쏠린 윤석열 정부 안보정책의 성공은 아직 자신할 수 없다.
‘한미동맹 재정립’이라는 대주제와 관련, 주목받는 의제는 단연 IPEF다. IPEF는 미국이 지난해 10월 제안한 인ㆍ태지역의 포괄적 경제협력체로, 중국 주도의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 맞설 ‘대항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다음 순방 일정인 방일 기간 공식 출범할 예정이다. 이후 참여 나라들이 △무역 △공급망 △청정에너지ㆍ탈탄소화ㆍ인프라 △조세ㆍ반부패 등 4가지 의제를 놓고 협상에 참여할지 말지를 결정한다. 한미정상회담 뒤에도 한국의 역할 범위 얼개가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한국, 미국, 일본 등) 8개국 참여가 확정됐고 한두 나라가 추가될 가능성이 있다”며 “한국이 IPEF를 주도하면서 새 규범 창출의 스탠더드를 제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IPEF는 우리가 한미 양자는 물론, 인ㆍ태지역 다자관계에서 지분을 키울 기회다. 경제안보 등 신흥안보 이슈들을 다루는 데다, 또 다른 협의체 ‘쿼드(Quad)’와 달리 이제 막 걸음마를 뗐기 때문이다. 출범 단계부터 한국의 가치관과 이익을 반영하기가 좀 더 수월하다는 얘기다.
사실 중요성만 보면 전통안보, 즉 북핵ㆍ미사일 공조가 더 시급하다. 김 차장은 “회담에서 (2018년 1월 2차 회의가 마지막이었던) EDSCG를 정례화하고 확장억제의 실질적 대응력을 강화하는 내용을 논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두 차례 회의에서 원론적 내용만 협의했던 만큼, 향후 전략자산 배치 등 구체적 계획을 합의하는 게 관건이다. 특히 대통령실은 바이든 대통령 방한 기간(20~22일)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도발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어 확장억제력 방안 마련에 적극적일 것으로 예상된다.
자연스레 필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는 코로나19 지원 등 대북 인도주의 의제는 뒷전으로 밀렸다. 한미 공히 “북한의 호응”을 전제로 깔고 있어 두 정상이 지원 의사를 밝히는 수준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인도적 지원이 정치 이슈로 변질될 수도 있다는 점도 고려됐을 것”이라며 “정상급 논의에서 한미가 먼저 패를 내보이면 외려 북한이 반응하지 않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미 양자동맹 내용 중 기술동맹 개념도 눈여겨볼 만하다. “한미는 그간 군사동맹을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경제동맹으로 확산시켰다. 이번 회담에선 기술동맹이 추가되지 않을까 예상한다”는 부분이다. 다자협력 실현의 대표 주자가 IPEF라면, 한미 협력에선 기술동맹을 앞세웠다고 볼 수 있다. 기술동맹 범주로 반도체, 첨단 배터리, 친환경 녹색기술, 인공지능, 양자기술, 우주개발 등 거의 모든 분야가 망라됐다. 지난해 5월 문재인 정부 당시 한미정상회담에 담긴 협력 주제들이긴 하나, 새 정부는 내용을 보다 알차게 진전시키겠다는 구상이다. 새 슬로건을 통해 전임 정부와 차별화를 꾀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보수 정체성 강화라는 이번 회담의 방향성은 분명하지만, 우려는 역시 우리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중국의 반발 가능성이다. IPEF, 기술동맹 등 주요 의제가 죄다 중국과 부딪힐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정부도 이를 실리외교로 포장해 한중 갈등으로 번지지 않기를 바라는 눈치다. 김 차장은 일례로 IPEF에 대해 “(한중 FTA 후속 협정을 통해) 중국과의 시장개방 논의도 함께 진행한다”며 “강대국끼리의 디커플링(탈동조화)으로 볼 필요까지는 없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