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출간된 ‘어머니의 나라’라는 책이 있다. 저자인 추와이홍은 싱가포르의 글로벌 로펌에 근무했다. 회사를 사직하고 우연히 여행 잡지에서 신비한 곳을 발견했다. ‘오래된 미래에서 페미니스트의 안식처를 찾다’라는 부제는 그녀의 모험에 대한 기록이다. ‘아버지가 없는 나라’라는 책도 있다. 현지인인 양얼처나무의 자서전이다. 이 두 '나라'는 같은 곳이다. 책을 읽으니 꼭 가고 싶었다. 모계 사회의 전통을 간직한 땅이다. 모쒀족(摩梭族)이 사는 ‘나라’다.
이 세상 마지막 남은 모계사회의 땅에 루구호(瀘沽湖)가 있다. 모쒀족은 ‘어머니 호수’라는 뜻으로 세나미(謝納米)라 부른다. 모계사회만큼 신비한 호수까지 있으니 출발부터 설렌다. 가깝지 않은 오지라 한번 마음먹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
호수 가운데를 경계로 윈난성과 쓰촨성으로 나뉜다. 쿤밍에서 출발하면 쓰촨 남부 도시 판즈화를 통과해 끝도 없이 북쪽으로 달려야 한다. 약 550㎞ 거리다. 하루 종일 달려야 한다. 2015년 호수 근처에 공항이 생겼다. 비행기를 타면 1시간도 걸리지 않지만 발품의 맛을 보긴 어렵다.
첫인상이 정갈하다. 호반 도로를 달리니 입부터 폐까지 호강이다. 늦은 오후가 준비한 선물이다. 찬란하게 쏟아지는 햇볕의 인사는 덤이다. 12월 초의 날씨는 봄날처럼 따뜻하다. 호수 동쪽 무콰촌에 예약한 객잔에 짐을 풀었다. 이름도 예쁜 청화당(聽花堂)은 언덕에 위치해 한눈에 호수를 조망할 수 있다.
루구호는 고원의 호수다. 수면 해발이 약 2,700m다. 오른쪽으로 유난히 높은 산이 멀리 보인다. 마을에는 숙소가 꽤 많다. 경치가 아름다울수록 관광사업은 화려해진다. 해가 금방 산을 넘어간다. 호수와 산이 어우러진 나라에 온 호기심으로 밤은 평소보다 무척이나 길었다.
루구호 면적은 50㎢, 호반 도로만 44㎞나 된다. 평균 수심이 40m가량이며 가장 깊은 지점은 100m가 넘는다. 모쒀족이 수백 년 전부터 살아온 터전이다. 호수와 더불어 동고동락했으니 어머니의 품이라 생각했나 보다. 생명을 잉태하는 양수처럼 신성시한다. 아침이 오는 소리를 들으며 호반으로 나간다. 새떼가 발랄하게 비행하고 있다. 아침 먹거리는 관광객이 던져주는 과자다. 물고기 찾아 노동하지 않고 쉽게 사는 법을 터득했다. 천연의 식탁에서 마음껏 날개를 흔들고 있다.
시계 반대방향으로 4㎞를 달리니 성 경계 표지판이 있다. 윈난으로 들어선다. 5분 정도 가면 거무여신산(格姆女神山)으로 오르는 관광지다. 안타깝게도 케이블카가 점검 중이라 운행하지 않는다. 해발 3,770m 정상에서 바라보는 전체 풍광은 다음 기회로 연기한다. 밝게 웃는 모쒀족 아가씨 사진이 안내판에 있어 아쉬운 마음을 달랜다.
모쒀족은 남자나 여자나 모두 어머니 집에서 산다. 따로 아버지가 없기 때문이다. 남자는 장가들지 않고 여자는 시집가지 않는 풍습, 모계로 이어지는 가모장제(家母長制) 전통에 대한 소개도 흥미롭다.
호수 전경을 볼만한 언덕을 찾았다. 언덕 끝에 티베트 불교의 대비해라경당(大悲海螺經堂)이 있다. 모쒀족은 전통 원시종교인 다바교(達巴教)를 숭상한다. 티베트 불교가 전래된 후 공존하는 듯하다. 리장 나시족의 동바교(東巴教)와도 비슷하다. 동바문자가 쓰인 풍령이 걸렸고 타르초가 휘날리고 있다. 하늘과 어울린 호수는 거울처럼 반짝인다. 팔랑거리는 오색 깃발 사이로 드러난 광활한 호수가 시원하게 펼쳐진 모습에 감동이 어린다.
문득 뒤돌아보니 거무여신산 위로 ‘산(山)’을 그린 구름이 보인다. 산 위에 산이다. 주위보다 높고 신령한 산이라 전설이 생겨났다. 거무는 ‘백색 여신’이라는 뜻이다. 아가씨 이름이기도 하다.
하늘에 사는 남신이 그녀를 탐했다. 광풍을 일으켜 납치하려 했다. 공중에 사로잡힌 채 살려달라 소리쳤다. 주민이 모두 나와 함성을 질렀다. 남신이 깜짝 놀라 거무를 놓쳤는데 그만 산꼭대기에 떨어지고 말았다. 마을로 내려오지 못한 거무는 나뭇잎 피리를 불며 백마를 타고 구름처럼 떠다녔다. 폭우나 광풍이 오기 전에 미리 소식을 전해주며 마을의 안녕을 기원했다. 산 위로 변화무쌍하게 날아다니는 구름은 모쒀족을 위한 신호라는 말이다. '메 산'자 구름은 어떤 징조일까?
시계방향으로 달리다가 샛길로 들어선다. 아담한 여신만(女神灣)이 있다. 가파른 길을 따라 내려가니 여신산 전체 윤곽이 정면에 펼쳐진다. 직선거리가 8㎞인데도 청명한 날씨 덕분인지 한 움큼에 잡힐 듯하다.
호수에는 교통수단인 배가 떠 있다. 통나무의 양쪽을 자르고 움푹 파서 만들었다. 돼지 구유처럼 생겨 저조선(猪槽船)이라 한다. 모쒀족은 르구(日故)라 부른다. 배를 원색으로 칠해놓은 이유는 분명 관광객을 겨냥한 치장이다. 옥구슬이 구르고도 남을 빙판 같은 호수를 바라보니 세상만사 다 잊힌다. 찻집과 식당도 있다. 호숫물 찰랑거리는 소리 들으니 시간도 멈춘 듯하다.
10㎞를 이동하면 둬서촌(多舍村)이다. 여기에 말대왕비부(末代王妃府)가 있다. 마지막 왕비가 살던 저택인데 굳게 문이 닫혔다. 모계사회의 여인국에 왕비가 있다니 살짝 당황스럽다.
소수민족의 통치자를 토사(土司)라 한다. 48곳의 촌락을 관할하던 토사 라바오천(喇寶臣)이 1943년 16세의 샤오수밍(肖淑明)과 결혼했다. 쓰촨의 명문 고등학교 교화(校花)로 뽑힐 정도로 아름다웠다. 게다가 한족이다. 당나라 문성공주가 티베트 왕에게 시집간 일만큼 화제였다. 토사를 대신해 정무를 돌보며 모쒀족의 왕비로 살았다. 1977년 토사가 사망한 후에도 왕비의 위엄을 지켰다. 2008년에 세상을 뜨자 결혼 초기에 거주하던 보와어(博洼俄) 섬에 유골을 뿌렸다. '왕비도'로 이름을 바꿨다.
동남쪽 끝에 주혼교(走婚橋)가 있다. 약 300m에 이르는 나무다리다. 마을을 잇는 다리로 습지인 초해(草海) 위에 지었다. 연인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모쒀족은 연인들은 서로를 아주(阿注)와 아샤(阿夏)라 호칭한다. 남자인 아주가 다리를 건너 여자인 아샤를 만나러 간다. 13세에 성인식을 치른 여인은 자기만의 방인 화루(花樓)에 기거한다. 아주가 생기면 밤마다 사랑을 나눌 수 있다. 하룻밤의 사랑을 마치고 해뜨기 전에 헤어진다. 다리를 건너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관광객이 많으니 공예품 파는 좌판이 많다. 루구호를 찾는 사람은 모두 다리를 찾는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터이니 아샤를 만나러 가는 아주처럼 걸어도 좋다.
다리를 건너 남쪽 도로를 달린다. 성 경계를 지나 윈난의 뤄수이촌(落水村)을 통과한다. 계속 북쪽 끝까지 가면 리거촌(里格村)이다. 언덕에서 바라보니 호수에 섬 하나가 보인다. 자세히 보면 걸어서 갈 수 있는 반도다. 호수로 입을 길게 내밀고 있는 모습이다. 아래로 내려가 호수를 따라 반도로 들어간다. 너비가 2m 정도로 좁다. 육지와 섬을 연결해주는 볼록한 다리가 하나 있다. 한걸음이면 넘을 만큼 작다.
반도 양쪽으로 객잔과 식당이 빼곡하게 줄지어 있다. 호수와 맞닿은 길을 따라 걷는다. 거의 수면 높이에 객잔 침대가 보인다. 호수가 유리창에 흥건하게 비친다. 물을 베개 삼아 하룻밤 지내면 환상이겠다. 물침대의 꿈도 색다를 듯하다.
호수를 뛰어노는 새떼가 많다. 저녁 찬거리를 찾는 듯 빙빙 솟구치며 날아다닌다. 비상하는 새를 따라 고개를 드니 거무여신산이 빛나고 있다. 햇살을 가득 끌어안은 산이 신령스러운 기운을 내뿜는 듯하다. 하루만 봤는데도 죽마고우처럼 정이 들었다.
숙소로 돌아오니 풀장에 조명이 켜졌다. 호수는 암흑으로 변했고 마을은 야경으로 밝다. 관광지로 변한 루구호의 밤이다. 모쒀족은 특별한 날이면 축제를 연다. 모닥불을 피우고 춤추고 노래한다. 마음에 드는 연인과 눈을 마주치는 시간이다. 주혼 풍습이 있으니 관광객은 호기심이 깊어진다. 모쒀족 사회에 대한 그릇된 선입견 때문이다. 흑심을 품어도 소용없다. ‘어머니의 나라’는 그런 편견을 버리게 한다. 술 한잔 기울이며 가족과 사회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도 좋다. 신비하고 따뜻한 루구호이니까.
다시 호수의 아침에 물안개가 자욱하다. 새들은 물살을 헤치고 헤엄친다. 배 한 척이 둥둥 떠 있다. 고기를 잡는지도 모르겠다. 해가 떠오르면 뿌연 기운도 점점 사라진다. 하늘이 파랗게 탈바꿈하면 호수도 본래의 색깔을 찾을 듯하다.
‘어머니의 나라’ 저자의 안식처인 통나무집을 찾아가려 한다. 책 내용과 사진을 봐도 지명이 어렴풋하다. 여신산이 바라다보이는 ‘달 호수 쪽에 위치’한다는 정보만 가지고 찾아간다.
호수를 벗어나 북쪽의 융닝(永寧)으로 방향을 잡는다. 제대로 찾을지 걱정이었는데 운이 좋았다. 마침 목적지가 같은 아가씨를 만났다. 차에 동승해 함께 간다. 모쒀부락(摩梭部落) 표지판이 보이고 비포장도로를 10여분 달리니 저택이 하나 보인다. 친절을 베푼 아가씨는 이곳에서 일하는 직원이었으니 여신이 보낸 전령이었던 셈이다. 마당에 아샤정(阿夏亭)이 있어 살포시 앉아본다. 첫사랑이라도 만난 듯 애틋한 마음이 새록새록 돋는다.
윈난 융닝 일대를 관장하던 토사의 저택이었다. 토사가 사용하던 물건이 전시돼 있다. 농기구가 많고 수렵이나 어업 관련 도구도 있다. 탈곡기와 방직기도 있고 양조장과 주방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토사의 가족사진을 보니 대가족이다. 토사와 부인, 형제자매가 함께 찍었다. 그 옛날 왕으로 살던 시절의 영화를 엿보는 느낌이다. 승려는 토사의 둘째 아들로 사원의 주지였다는 설명도 있다. 그래서인지 기도실도 있다. 이제는 기도할 사람이 없어 곡물 창고로 사용한다.
토사 저택 옆에 ‘어머니의 나라’ 저자인 추와이홍의 집이 있다. 싱가포르로 가서 부재중이다. 안으로 들어가도 좋다고 한다. 전통 가옥으로 꾸민 방이다. 창문으로 햇살이 쏟아지고 훠탕(火塘)이 있어 따스한 분위기다. 백마 타고 날아오르는 여신이 그려진 벽화도 보인다.
모쒀족 축제위원회가 감사 인사를 적은 깃발이 있다. 저자의 중국 이름은 차오후이훙(曹惠虹)이었다. 창문을 열고 밖을 보니 여신산이 한눈에 보인다. 저자는 잡지에서 본 루구호로 여행을 떠났고, 거기서 만난 모쒀족과 가족이자 친구가 됐다. 그녀의 안식처가 정말 부럽다.
발품 기행은 북쪽을 향해 진행한다. 융닝을 지나 꼬불꼬불 산길로 1시간을 달렸다. 고개를 넘어가다 멈췄다. 여전히 거무여신산의 자태가 웅장하다. 구름조차 정상 아래 머문다. 여신산의 전설을 믿는 모쒀족은 루구호를 벗어나도 여전히 많다. 비포장도로가 이어지고 오르막에서는 숨이 막힌다. 산 하나를 다시 넘는다. 역시 산길이 이리저리 뒤죽박죽이다. 차량도 쉬려고 고개 위에 멈춘다. 북쪽 하늘로 설산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눈 쌓인 산은 언제 봐도 감동이다.
산세가 깊어 조심조심 내려간다. 산허리를 뚫은 도로를 돌파하니 거와촌(格瓦村)이다. 이 마을에도 모쒀족이 많이 산다고 한다. 또다시 산 하나를 넘는다. 고개를 넘고 또 넘어 오르락내리락한다. 차량도 별로 없는 길이다. 고개에 다시 서니 이번에는 옥처럼 맑은 물이 흐르는 강이 등장한다. 장강 상류인 금사강(金沙江)이다. 여전히 시야를 따라오던 설산도 멀리 보인다. 조심스레 산길을 내려간다.
루구호에서 80㎞ 거리를 2시간 30분 걸려 라보촌(拉伯村)에 도착했다. 모쒀족 일가족이 운영하는 강변 식당을 찾았다. 관광지로 변한 루구호에서는 보기 힘들 정도로 허름하다. 아주머니가 주방에서 요리를 한다. 감자와 버섯, 고기 볶는 냄새가 구수하다.
밥이 익는 훠탕 옆에 앉은 할머니의 눈매가 매섭다. 빨간 두건을 두른 모습도 강렬하지만 이방인을 바라보는 눈빛이 장난이 아니다. 생활력 강하고 지혜로운 ‘어머니’를 풍기고 있다. 눈인사를 받아준다. 그제서야 주름살과 함께 미소 짓는 얼굴이 인자하기 그지없다. 가모장제 사회의 연륜이 결코 간단하지 않는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루구호는 한 번의 여행으로는 겉핥기일 수밖에 없다. ‘어머니의 나라’에 다시 가야 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