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 왜 날 살리셨나"… DJ, 직설적 옥중심경 처음 공개돼

입력
2022.05.17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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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호 여사 1981년 11월 2일 청주교도소 방문
'내란음모' 수감 "자다가도 숨이 막혀 기도로 극복"

"조남기 목사님께 하느님이 왜 날 살리셨나 원망도 했었다. 내 일생 이토록 치욕스럽고 괴로웠던 적이 없다."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이 17일 '내란음모 조작사건'으로 수감돼 고초를 겪었던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옥중심경이 담긴 메모를 공개했다. 5·18광주민주화운동 42주년을 맞아 공개된 이 메모엔 이희호 여사가 1981년 11월 2일 청주교도소에 수감된 김 전 대통령을 면회한 뒤 정리한 발언이 담겨 있다.

김 전 대통령은 1980년 5월 17일 전두환 신군부가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면서 연행됐다. 신군부는 김 전 대통령이 1980년 서울의봄 당시 대규모 시위와 5·18민주화운동을 배후 조종해 국가 변란을 꾀했다는 이른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을 조작했다.

김 전 대통령은 1980년 9월 17일 사형선고를 받은 뒤,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됐다가 무기형으로 감형됐다. 김 전 대통령은 1981년 1월 31일 육군교도소에서 청주교도소로 이감됐다.

김 전 대통령은 그해 2월 11일 처음으로 이희호 여사와 면회했고, 이 여사는 짧은 면회 시간 동안 김 전 대통령의 건강 등을 확인하면서 국내외 동향을 알려줬다. 이 여사는 면회 도중 김 전 대통령 말을 정리한 메모를 남겼는데, 그중 일부가 이날 공개된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은 "비로소 하는 말이지만 그간 자포자기하여 발광 직전까지도 간 적이 있다"며 "조남기 목사님께 (면회시) 하느님이 왜 나를 살리셨나 원망도 했었다. 내 일생 이토록 치욕스럽고 괴로웠던 적이 없다"고 밝혔다. 또 "자다가도 숨이 턱 막히며 치밀어올라 못 견딜 지경이면 일어나 기도함으로써 극복하고 했었다"며 "이제 그 고비를 넘겼기 때문에 비로소 얘기한다"고 했다.

김대중도서관은 "이 여사가 수감 중인 김 전 대통령을 면회할 때 작성한 자료가 공개된 것은 처음"이라며 "이 사료는 전두환 정권의 탄압에 맞서 여러 어려움을 극복해 가는 김대중-이희호의 의지와 당시 심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 전 대통령은 수감 중 병고에 시달리고 사형수로서 생사 위기를 겪는 도중에도 자신의 고통을 절제된 언어로 표현하곤 했었다"며 "이번에 공개한 사료에서처럼 자신의 고통을 가감 없이 직설적으로 표현한 경우는 찾기 어렵다. 내용적 측면에서 매우 특이한 사례"라고 밝혔다.

김도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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