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은 “어차피 인생은 혼자… 그냥 쭉 연기해보자 생각”

입력
2022.05.17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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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단독 주연 영화 '오마주' 26일 개봉

이번엔 영화감독이다. 이전과 다른 면모다. “지적인 인물을 연기했다”고 말을 건네자 “생선 만지는 역할만 할 줄 알았냐”며 크게 웃었다. 16일 오후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이정은은 내내 얼굴에 미소를 담았다. 그는 첫 단독 주연 영화인 ‘오마주’의 개봉(26일)을 앞두고 있다.

‘오마주’에서 이정은은 ‘실패한 감독’ 지완을 연기했다. 재미 없는 영화를 만든다고 아들(탕준상)에게 구박받고, 돈을 벌지 못한다고 남편(권해효)에게 지청구를 듣는 인물이다. 세 번째 영화 ‘유령 인간’이 흥행에 참패해 영화계에서 유령 취급을 받을 처지다. 지완은 아르바이트를 위해 한국 고전영화 ‘여판사’(1962)의 복원 작업에 나섰다가 한국 영화사에서 잊힌 여성 영화인의 삶을 알게 되고 영화에 대한 열정을 되살린다.

이정은은 “시나리오를 읽고 20분 만에 출연을 결정했다”고 했다. “연출한다고 두어 번 공연을 말아먹은” 과거가 있어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이다. “감독이라는 꿈과 엄마와 아내라는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는 지완의 모습이 관객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실패만 맛보는 지완의 모습에 이정은의 과거가 어른거린다. 이정은은 마흔 중반이 돼서야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대타로 연극 연출에 나섰다가 수천만 원 빚을 지는 등 힘겨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하지만 이정은은 “포기하고 싶은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고 했다. 그는 “살아가면서 두 가지 선택이 있는 것 같다”며 “그냥 관두든가, 해보든가 하나다”고 말했다. “어차피 인생은 혼자 살아가는 것인데, 저는 그냥 가보자고 생각했어요.” 어렵사리 연기 인생을 이어온 건 “재미있어서다”. 이정은은 “안 되니까 오기가 생기고 재미가 있더라”고 말했다.

‘오마주’에서 한 원로 여성 영화인은 예전보다 여성에 대한 대우가 많이 좋아졌다고 말한다. 지완은 현실이 여전히 못마땅하나 시대의 변화를 인정한다. 이정은 역시 20~30년 전보다 세상이 달라졌다고 생각한다. “저 같은 사람이 주인공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걸 보면 많이 나아진 게 분명해요.” 이정은은 “조연 쪽에서 여자 배우들의 역할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는 것도 좋은 현상”이라고 덧붙였다.

출연을 빠르게 결정했으나 첫 주연작에 대한 부담은 있었다. 하지만 “도전하지 않으면 제 또래 동료들에게도 기회가 안 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정은은 “‘오마주’ 덕분에 tvN 인기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를 선택하기가 쉬웠다”고도 했다. 그는 “주연 경험을 하게 되니 욕심이 났다”고 설명했다. “노희경 작가님 드라마에 출연하리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노 작가님 작품엔 좀 반듯해 보이고, 멜로를 많이 하는 배우들이 나온다고만 생각했거든요.”

누구나 높이 평가하는 배우이나 그도 “최악”의 연기를 한 적도 있다. ‘와니와 준하’(2001)로 영화에 처음 출연했을 때다. 이정은은 시나리오 작가인 주인공 준하(주진모)의 선배로 잠깐 얼굴을 비췄다. 뻣뻣한 연기가 그답지 않다. 이정은은 당시 “너 (연기) 끔찍하다”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고, 거대한 카메라가 눈앞에 있으니 경직됐던 듯하다”고 돌아봤다. 이정은은 이후 수년 동안 카메라 앞에 서지 않았다. “지나간 과거를 어떻게 하겠어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기도 하잖아요. ‘언니도 그런 시절이 있었구나’ 하면서 후배들이 좋아해요.” 긍정과 달관이 배우 이정은을 만든 듯했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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