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디와 베르사체, 뜻밖의 컬래버

입력
2022.05.17 20:00
25면

편집자주

패션칼럼니스트 박소현 교수가 달콤한 아이스크림 같은 패션 트렌드 한 스쿱에 쌉쌀한 에스프레소 향의 브랜드 비하인드 스토리를 샷 추가한, 아포가토 같은 패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패션계를 놀라게 한 '구찌 x 발렌시아가'의 장르 파괴적 컬래버레이션의 여파가 채 가시기도 전에 '펜디 x 베르사체'도 컬래버레이션을 감행했다. 이는 그간의 패션 컬래버레이션과는 그 결이 달랐다. 보통은 아래의 공식처럼 브랜드 간의 파워도 카테고리도 달랐다.

유명 대중 브랜드 x 신예 브랜드 or 디자이너

유명 대중 브랜드 x 럭셔리 브랜드

유명 대중 브랜드 x 이종 분야(푸드, 아트, 캐릭터 등)

그런데 '구찌 x 발렌시아가', '펜디 x 베르사체'는 서로 간의 우위를 가늠하기 어려운 '럭셔리 x 럭셔리'라는 새로운 공식의 컬래버레이션을 해버린 것이다. 그 회사 인력들이 얼마나 많은 회의를 하고 디자인을 수정했을까! 상상만 해도 두통이 치통급으로 오는 것 같다.

그러나, 이 문제를 모기업과 자회사의 개념으로 보면 또 다르다. 우리가 생각하는 럭셔리 브랜드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유럽의 고집스런 장인 정신 기반의 고가 상품'을 취급하는 곳 즉, 단일 회사로 생각하기 쉽다. 아이러니하게도 1990년대 후반부터 감행된 럭셔리 브랜드들의 기업 인수 합병(M&A)으로 럭셔리는 산업화 및 기업화되었다.

하단의 유명 럭셔리 브랜드들의 모기업을 보면 알 수 있는데 패션 브랜드 위주로 한국에서 유명한 럭셔리 브랜드를 정리해보았다.

◇ LVMH 그룹: 펜디, 루이비통, 벨루티, 셀린, 크리스찬 디올, 지방시, 겐조, 로에베, 로로피아나, 마크 제이콥스, 리모와

◇ 케링 그룹: 구찌, 발렌시아가, 생로랑, 보테가 베네타, 알렉산더 맥퀸

◇ 리치몬드 그룹: 알라이아, 끌로에, 델보, 몽블랑

◇ OTB 그룹: 메종 마르지엘라, 빅터 앤 롤프, 질샌더, 마르니

◇ 메이훌라 인베스트먼트: 발렌티노, 발망

◇ 프라다 그룹: 프라다, 미우미우

◇ AEFFE 그룹: 모스키노, 알베르타 페레티

◇ TOD’s 그룹: 토즈, 로저 비비에

◇ 카프리 홀딩스: 베르사체, 지미추, 마이클 코어스

따라서, 구찌(케링) x 발렌시아가(케링)는 자회사 간 단기 협력 상품 출시에 해당하고, 펜디(LVMH) x 베르사체(카프리)는 타사 간 한시적 협력 상품 출시인 것이다.

이렇듯 럭셔리 브랜드들이 기업화되면서 유럽의 고집스런 장인 정신 → 생산 최적화, 오랜 역사와 전통 → 고객 지향적으로 바뀌었다.

'오랜 역사와 전통'은 조상님이 물려주신 값비싼 유산일 수 있다. 그러나 3대째 내려온 맛집도 고객과 시대의 흐름에 따라 30~70대 위주의 홈쇼핑 판매를, 10~40대 타깃의 배달앱 판매를 하듯이 '오랜 역사와 전통'도 컬래버레이션의 파도를 피해갈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의 럭셔리는 소수의 부유층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수요 증가에 따라 럭셔리 브랜드는 과거 도제식의 생산 체계를 공장화하여 규모를 갖춘 지 오래다. 지금의 럭셔리는 자신을 위한 투자나 취향의 발현 또는 재테크 수단으로 개념이 변형되었다. 주 소비 계층이 MZ세대로 바뀌면서 디자인도 과거보다 한층 젊어졌다.

새로운 것에 눈을 반짝거리는 지금의 럭셔리 고객과 시류의 흐름을 탄 '럭셔리 x 럭셔리'의 컬래버레이션은 곧 럭셔리 브랜드들의 연례행사가 될 것이다.



박소현 패션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