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대리점 신입직원 A(23)씨는 2018년 12월 26일, 1년 3개월간 교제했던 직장상사 B씨에게 헤어지자고 했다. 이별 통보에 격분한 B씨는 그달 31일 오전 5시 A씨 집으로 찾아가 "너를 죽이러 왔다"며 A씨를 때리고 흉기로 위협한 뒤 성폭행했다. B씨가 다시 찾아올까봐 두려웠던 A씨는 경비업체에 연락해 보호를 요청했다. 출동한 경호원은 신변보호 조치와 함께 찢어진 옷가지, 흉기, 현장사진 촬영 등 범행 피해 증거 수집을 도왔다. B씨는 2020년 8월 1심에서 징역 3년 6개월 형을 받았다.
2016년 5월 17일 '강남역 살인 사건'으로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렸던 여성 대상 범죄가 성폭력, 데이트폭력, 스토킹, 불법촬영 등 다양한 형태로 온존하고 있는 가운데, 보다 실효성 있게 범죄 피해를 예방하겠다며 경찰이 아닌 민간 경비업체를 찾는 여성이 늘어나고 있다. 다만 하루 비용이 수십만 원에 달할 만큼 고가인 데다가 적격업체인지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은 만큼 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6일 경찰청이 집계하는 '최근 10년간 경비업체 현황'에 따르면, 경찰청 허가를 받은 신변보호업체는 2013년 525개에서 올해 2월 581개로 증가했다.
경찰청과 경비업계에 따르면 신변보호업체는 의뢰인이 신변보호를 요청하면 계약서를 작성한 뒤 경찰서 생활안전계에 경비원 배치 신고서를 제출하고 의뢰인을 근접 보호하게 된다. 스마트워치 신고와 인접 지역 순찰을 중심으로 하는 경찰의 '범죄피해자 보호조치'와 비교해 실시간으로 위협에 대응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꼽힌다.
업체들은 의뢰인들이 신변보호 요청 이유로 '사건이 일어나기 전 보호받을 수 있다'는 점을 꼽는다고 했다. 신민섭 거목시스템 대표는 "신변보호를 요청한 여성 고객 가운데 상당수는 이미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던 경험이 있다"며 "경찰은 사건사고가 일어난 후 출동하기 때문에 대응이 늦다고 여겨 사설업체를 찾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17년차 경호원 이모씨도 "고객들이 경찰에 신변보호 요청을 해도 불안하다는 판단에 의뢰를 해온다"면서 "신변보호 여성 살해 사건이 반복된 것도 사설 경호업체 시장이 예전보다 활성화된 원인 중 하나"라고 말했다.
비용은 적지 않다. 한국일보가 인력 매칭 플랫폼에 신변보호 견적을 의뢰한 결과, 12개 업체가 제시한 평균 비용은 경호원 1인당 8시간 기준 19만 원이었다. 적게는 5만 원부터 많게는 30만 원까지 제시됐다. 경호원은 통상 2인 1조로 배치되기 때문에 24시간 경호를 받으려면 하루 수십만 원의 비용을 치러야 한다.
신변보호업체가 늘어나고 있지만 의뢰인 입장에서 믿을 수 있는 업체를 가리기란 쉽지 않다. 다수의 업체가 온라인에서 경호 경력을 홍보하고 있지만, 경호했던 대상과 내용을 밝히지 않는 게 업계 불문율이다. 한국경비협회에서 경비원을 상대로 '신변보호사' 자격을 부여하고 있지만 국가가 아닌 민간 자격증이다. 경찰청장이 발급하는 건 '경비지도사' 자격증이 유일하다. 경찰청 관계자는 "경찰청 허가 업체가 맞는지 계약 단계에서 허가증을 확인해야 한다"며 "경비원 배치 신고는 해당 경호원의 범죄 이력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이기 때문에 경비업체가 반드시 거쳐야 한다"고 조언했다.
경호원이 배치되더라도 적극적인 물리력 행사는 불가능하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경호업계 관계자는 "경호원의 최대 목적은 의뢰인의 피난 및 보호이기 때문에 폭력 상황이 발생하면 적극 대응하기보단 맞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경호원이 폭력을 쓸 경우 '타인에게 위력을 과시하거나 물리력을 행사해선 안 된다'는 경비업법(15조2) 위반과 일반인에게 적용되는 형법상 폭행죄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범죄에 노출된 경험이 있는 여성 입장에선 불안감에 경찰의 보호만으론 한계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며 "미국 사례처럼 민간 참여로 신변보호 서비스 영역이 확대될 수 있지만, 해당 업체가 충분한 역량이 있는지에 대한 검증과 평가가 정기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