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기지, 닫힌 공간에서 소통의 공간으로

입력
2022.05.17 06:30

편집자주

※서민들에게 도시는 살기도(live), 사기도(buy) 어려운 곳이 되고 있습니다. 부동산은 치솟고 거주 양극화는 갈수록 심해집니다. 이런 불평등과 모순은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요. 도시 전문가의 눈으로 도시를 둘러싼 여러 이슈를 하나씩 짚어보려 합니다. 주택과 부동산 정책, 도시계획을 전공한 김진유 경기대 교수가 <한국일보>에 3주에 한 번씩 연재합니다.



<37> 용산공원, 대통령과 국민의 소통공간으로 재탄생해야

대통령 집무실 이전으로 용산은 완전히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됐다. 기존의 용산공원 조성계획은 전면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대통령이 있는 공간이 갖춰야 할 기능적, 안보적 조건들이 추가돼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이러한 극적인 변화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는다면 용산공원은 국민도 대통령도 불편한 공간이 될 수 있다. 경복궁 창건 이래 600년 이상 북악산 아래 머물던 정치의 중심이 서울의 한가운데로 옮겨간 지금,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용산공원은 어떻게 만들어져야 할지 생각해보자.

용산기지의 슬픈 역사

용산(龍山)은 한강과 연결된 나루로서 물류와 군사의 요지로 오랫동안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조선시대 용산은 한강의 수운과 육로의 결절점으로 사람과 물자가 모이는 장소였다. 그런 이유로 군수물자를 관리하는 군자감(軍資監)을 비롯해 지방에서 올라오는 공물을 보관하는 만리창(萬里倉) 등 많은 창고가 여기 있었다. 뿐만 아니라 용산은 군사적인 요충지였으므로 조선은 한강으로 침입하는 적을 막기 위해 상시 군사를 주둔시켰다. 그로 인해 임오군란(1882) 때는 청나라 군대가 주둔했고, 청일전쟁(1894~1895) 이후 일본군이 본격적으로 군사기지로 활용했다.

일본의 제국주의 전쟁에 희생됐던 용산은 광복을 맞이하고서도 그 멍에를 벗지 못했다. 미군이 뒤이어 주둔하게 된 것이다. 김경록(2019)의 '외국군 주둔과 용산의 군사역사'에 의하면, 1945년 9월부터는 조선 주둔 미군 사령관 하지(J. R. Hodge) 휘하의 제7보병사단이 용산기지의 주인이 됐다. 미 군정시절에는 최대 7만 명의 미군이 한국에 주둔했으나 정부 수립 이후 500명의 군사 지원단만 남게 되어 용산은 우리에게 돌아올 기회를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6·25전쟁이 터지면서 물거품이 되고 다시 대규모 미군이 주둔하게 됐다. 1969년 닉슨독트린 발표를 계기로 주한미군의 감축과 용산기지 이전이 지속적으로 추진됐지만 용산은 아직 우리 품으로 완전히 돌아오지 못했다.

용산, 지리적 중심에서 정치 중심으로

용산기지 이전 협정이 국회의 비준을 받은 이듬해인 2005년 10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에서 "오랫동안 외국 군대가 사용해 온 용산의 미군 반환부지를 세계에 내세울 수 있는 민족역사공원으로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2007년에는 '용산공원조성특별법'이 제정되고 종합기본계획도 수립되는 등 지속적으로 공원화 작업이 진행돼 왔다.

전문가들과 국민들의 의견을 모으는 활동도 꾸준하게 이뤄졌다. 2009년 국토해양부가 주관한 '용산공원 아이디어공모'에는 127개팀이 작품을 출품함으로써 국민들의 뜨거운 관심이 다시 한 번 확인됐다. 2011년 말에는 '용산공원 설계 국제공모'가 진행됐다. 참가의향서를 제출한 49개팀 중 8개팀이 지명초청돼 최종 설계작품을 제출했는데, 대체로 치유, 생태, 역사, 자연, 문화 등이 핵심 키워드였다.

그런데 이러한 설계안들은 전면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용산에 '정치'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용산공원의 기본 조건이 완전히 바뀐 것이다. 공원부지 한가운데에 있는 대통령 집무실은 그저 공원이 치유와 여가의 공간으로 머무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아직 출퇴근을 하고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새로운 관저와 부속시설들이 들어서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대통령과 연관이 있는 중요한 정부기능과 대사관들이 용산으로 이전해올 가능성이 있다. 이제 용산공원은 이러한 변화를 반영해 계획을 변경해야 한다.

백악관 앞 공원과 뉴욕의 센트럴파크

용산공원은 부지 면적이나 위치를 볼 때 뉴욕의 센트럴파크나 런던의 하이드파크에 버금가는 세계적인 명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동안 많은 논의와 설계안들은 이러한 기대를 실현시킬 수 있는 방안을 찾는 데에 주력했다. 그러나 이제는 보다 복잡한 방정식을 풀어야 하므로 다른 사례들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워싱턴 D.C.의 백악관은 도시 한가운데에 있고 대통령공원 및 내셔널몰, 웨스트포토맥공원과 연결돼 있다. 그러니 용산에도 상당히 참고가 될 수 있다. 용산공원과 대통령의 공간, 그리고 시민들의 공간이 어떻게 배치되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해 시사점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내셔널몰은 걸어서 5, 6분이면 횡단이 가능한 폭 500m 정도다. 백악관 앞 펜스에서 남쪽으로 약 600m를 가면 워싱턴 기념탑이 있고 그것을 중심으로 서측에는 링컨기념관, 동측에는 미국의회의사당이 있는 길이 4㎞의 내셔널몰이 있다. 이 모든 시설들은 공원 안에 자리하고 있으며 백악관 경내를 제외하면 모두 시민에게 개방돼 있다.

뉴욕의 국제업무지구인 맨해튼 섬 한가운데 위치한 센트럴파크는 폭 800m, 길이 4㎞의 장방형 공원으로 내셔널몰과 길이가 같다. 섬의 폭이 3㎞ 내외인 점을 감안할 때 대부분 도보로 10분 안팎이면 접근이 가능하고 공원을 가로지르는 데에도 10분이면 된다.

무엇보다 눈여겨봐야 할 두 공원의 가장 큰 차이점은 주변 지역의 개발상황과 성격이다. 우선 백악관 대통령공원과 내셔널몰 인근에는 고층건물이 없다. 고도제한이 있기 때문인데, 인근의 로널드 레이건 공항과 펜타곤을 포함해 주요 기관의 안전과도 관련이 있다. 결과적으로 주로 10층 내외의 블록형 건물이 도심을 채우고 있다. 반면 센트럴파크 주변은 초고층 건물이 즐비하다. 공항과도 떨어져 있을 뿐 아니라 국제업무지구의 특성상 고층복합개발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오피스, 주상복합, 쇼핑, 문화시설이 고밀 개발돼 있으므로 센트럴파크는 주중에도 밤낮 가리지 않고 뉴욕시민과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더 많은 국민에게 소통과 힐링 공간이 되길

용산공원은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20년 가까이 수많은 고민과 논의를 거쳤지만 그 속에 대통령은 없었다. 앞으로 그곳은 대통령과 국민이 함께 소통하는 공간을 지향할 수밖에 없게 됐다. 결국 용산공원은 백악관 앞 공원과 센트럴파크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 역사와 치유, 소통 기능을 모두 갖춘 공간이 돼야 한다.

우선 기존의 시설, 대통령 시설, 공원의 연결과 소통에 대해 생각해보자. 대통령 집무실은 전쟁기념관과 국립중앙박물관을 잇는 남북축 상에 있다. 그러므로 이 남북축은 대통령 관저와 국가 기념비적인 시설들을 배치하는 공간으로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총 길이는 2㎞ 정도로 내셔널몰의 반 정도라 콤팩트하게 활용할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주변의 개발밀도와 층고도 중요하다. 더 많은 시민이 이용하도록 만들고 싶다면 공원 인근은 고밀복합으로 개발하는 것이 적절하다. 주변이 고밀복합 개발된 센트럴파크의 이용률이 내셔널몰보다 월등히 높다는 점을 본다면 말이다. 그러나 초고층은 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미 용산공원 인근에 들어선 고층 아파트에서는 대통령 집무실 앞마당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더 많은 고층 건물은 더 많은 위험을 의미하므로 신중해야 한다. 바로 옆에 최고 수준의 공원이 있으니 굳이 단지 내에 오픈스페이스를 모두 갖출 필요가 없다. 단지형 아파트가 아니라 블록형 아파트를 적극 도입하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다.

용산공원의 형태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뉴욕 센트럴파크(폭 800m), 런던 하이드파크(폭 1,000m), 파리 튀일리가든(폭 300m)과 같은 도심 한가운데 있는 공원들은 폭이 대체로 도보 10분 내외이고 장방형이다. 적절한 폭은 평상시 출퇴근이나 산책에 활용하는 데에 필수적 요소다. 현재의 계획대로라면 용산공원 부지는 비정형이어서 폭이 넓은 남측은 약 2㎞에 이른다. 이렇게 폭이 넓으면 공원을 횡단하기 어렵고, 연결과 소통의 공간이 아니라 닫힌 공간이 되기 쉽다. 그러므로 부지 남서측은 용산국제업무지구와 연계하여 고밀복합으로 개발하고 용산공원의 폭을 1㎞ 내외로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일 것이다.

용산공원화 계획이 발표된 지 20년이 돼가지만 언제 우리 곁으로 올지 여전히 알 수 없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으로 속도는 한층 빨라질 전망이지만, 계획에 없던 돌발 변수가 되어 최적안을 만드는 일은 훨씬 더 어려워졌다. 단지 공원 내부만 보지 말고 대통령 시설, 용산 전체의 개발방향과 어떻게 조화를 이룰지 고민해야 한다. 너무 서두르면 국제적 수준의 공원을 조성하고도 소통이 부족한 주말용 공원이 될 수도 있다. 조건이 바뀐 만큼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장기적인 계획을 통해 수백 년 사랑받는 국가공원이 되길 기대해 본다.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