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극우 음모론 사이트인 '포챈(4chan)'이 주목받고 있다. 뉴욕주 버펄로의 한 슈퍼마켓에서 13명에게 총기를 난사한 범인이 범행 동기 등을 담은 글을 이 사이트에 올린 사실이 확인되면서다.
15일(현지시간) 미국 NBC뉴스는 전날 버펄로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고의 범인 페이튼 젠드런(18)이 12일 포챈에 범행 동기와 준비 과정 등을 서술한 180쪽 분량의 선언문(manifesto)을 올렸다고 보도했다. 그는 선언문에서 '미국의 백인 사회와 문화가 유색인종에 의해 대체될 위험에 처했다'는 내용의 음모론인 '인종 대체 이론'을 주장했다. 자신이 파시스트이자 백인 우월주의자라고도 기술했다.
젠드런은 또 자신의 선언문을 올린 포챈을 통해 범행 과정을 생중계할 예정이라고 예고하기도 했다. 실제 생중계는 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 '트위치'에서 이뤄졌지만, 포챈 이용자들은 그의 영상을 녹화해 해당 사이트에 유포했다. 이들은 슈퍼마켓 내부에 총격당한 피해자가 쓰러져 있는 모습까지 캡처해 올렸지만 게시물은 즉각 제재받지 않았다.
포챈은 이전에도 다수의 인종차별적 총격 사건 범인들이 이용한 것으로 드러나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온상’으로 꼽힌다. 포챈과 여기에서 파생된 온라인 커뮤니티 에잇챈(8chan)에는 각종 극우 이념과 음모론이 횡행해 국내에선 일명 미국판 ‘일베(일간베스트)’로 알려져 있다. 사이트 이용자들은 백인 우월주의, 반여성주의, 네오나치즘 등을 표방하고 혐오 발언을 거리낌 없이 내뱉지만 별다른 제한을 받지 않는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을 지지하는 음모론자 집단 '큐어넌(QAnon)'도 포챈에서 출발했다.
또 2019년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의 이슬람 사원 총기 난사 사건과 미국 텍사스 엘패소 마트에서 발생한 총격 사건, 독일 작센안할트주 유대교회당 총격 사건 범인 모두 이 사이트들을 애용했다. 이들은 사이트에 미리 선언문을 올리거나 범행을 생중계했는데, 젠드런 역시 이들을 따라 모방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풀이된다. 젠드런은 자신이 "포챈을 이용하면서 급진적으로 변했다"고 밝혔다.
에잇챈은 2019년 8월 폐쇄됐지만, 포챈은 여전히 운영 중이다. 신시아 밀러 이드리스 아메리칸대 사회학자는 미국 워싱턴포스트(WP)에 "극단주의 커뮤니티에서의 그의(젠드런) 변화 과정은 점차 조직화된 집단보다 온라인 네트워크를 통해 확산하는 백인 우월주의의 특징을 보여준다"며 "사람들은 온라인 공간에서 극단주의 콘텐츠에 노출되며 여기에 전념하게 되고, 급진화된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