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량'한 이들의 소름 끼치는 침묵

입력
2022.05.19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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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9 버밍엄 편지

1963년 4월 12일 마틴 루서 킹이 앨라배마주 버밍엄 구치소 독방에 갇혔다. 1955년 로자 파크스의 버스 흑백분리 거부운동, 1960년대의 연좌 시위(Sit-in), 1961년의 '프리덤 라이더스(Freedom Riders)' 캠페인 등으로 미국 남부 전역에서 흑인 인권운동이 격화하던 때였다. 버밍엄시 백인 성직자 8명이 흑인들의 '시위 취지에는 동조하지만 조급하게 모든 것을 이루려는 것은 득보다 실이 크다'며 시위 중단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킹이 백인 리버럴들의 주장을 반박한 글이 유명한 '버밍엄 편지'다. 뉴욕포스트 선데이 매거진이 입수해 1963년 5월 19일 세상에 알린 그 글에는 소수자 인권 요구를 '나중에'라며 밀쳐 두려는 모두가 되새겨야 할 구절들로 가득하다. 그 글의 요지를 수정 발췌했다. (원문은 여기)

"(우리) 목표에는 동의하지만 직접행동에는 동의할 수 없다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흑인들에게 '때가 무르익을 때까지' 기다리라고 합니다. 더러 우리를 더 힘 빠지게 하는 것은 악의를 가진 이들의 절대적 몰이해가 아니라 선의를 가진 이들의 어설픈 이해입니다. 그들은 직접행동이 아니라 사회적 합의를 주장하지만, 직접행동과 그로 인한 긴장감이야말로 사회적 합의에 이르기 위한 비폭력 저항의 목적입니다.

당신들은 비폭력 시위가 충돌을 유발하므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예수의 십자가 고난과 신자들에 대한 박해가 신의 뜻을 전파한 예수 탓이던가요? 당신들은 기독교가 오늘에 이른 2,000년 세월을 언급하며 우리 요구를 시기상조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시간 자체는 정의의 편도 악의 편도 아닙니다. 시간은 파괴적으로도 건설적으로도 쓰일 수 있습니다. 회개해야 할 것은 악의와 증오뿐 아니라 소위 선량한 자들의 소름 끼치는 침묵입니다. 우리는 시간을 창조적으로 써야 하며, 정의의 일에는 시의적절한 때가 따로 있지 않습니다.

미국을 인종차별의 사상누각이 아니라 인권과 존엄의 반석 위에 놓아야 할 가장 적절한 때는 나중이 아니라 바로 지금입니다."

최윤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