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단체가 운영하는 보육원이 봄나들이를 하던 중에, 지적장애가 있는 스무 살 청년이 경련을 일으키면서 쓰러졌다. 응급차에서 경련은 점점 더 심해졌고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 환자는 이미 의식이 없었다. 검사 결과 뇌의 심한 손상뿐 아니라 심장기형의 합병증으로 폐와 콩팥까지 손상되어 있었다. 중환자실에 입원한 환자는 인공호흡기와 혈액투석기로 생명을 이어가는 상태가 되었다.
중환자실에서 3주가 지났으나 환자 상태는 계속 악화했다. 어떤 시술을 해도 회생 가능성이 없다는 의료진의 판단을 들은 보육원장은 연명의료중단에 대해 문의했다. 그러나 환자의 가족관계증명서에는 친부가 남아 있었기에, 보육원장은 연명의료중단을 결정할 권한이 없었다.
친권포기각서를 작성하고 장애가 있는 아들을 보육원에 맡기고 떠난 아버지의 사연도 기구했다. 첫째 딸을 낳고, 둘째로 태어난 아들은 구개열(언청이)이었다. 이는 간단한 수술로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했으나 뇌성마비를 수반한 지적장애가 있었고, 다른 신체적인 기형과 장애들이 추가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는 유전자검사 결과는 젊은 부부를 낙담시켰다.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아기의 병구완으로 지친 젊은 부부에게 IMF 외환위기까지 겹쳐 경제적 사정도 어려워졌다. 결국 첫째 딸은 엄마가 양육하고, 아들은 아빠가 돌보기로 하고 이혼했다. 아이가 자라면서 아빠 혼자서 돌보는 것이 더 힘들어졌다. 결국 아들이 다섯 살이 되던 해, 아빠는 장애아를 해외에 입양시켜준다는 사람에게 수수료를 주고 아이를 부탁했다.
그러나 해외입양 절차가 완료되었다고 아들을 데려간 며칠 후, 아이는 길에 버려진 상태로 경찰에 의해 발견되었다. 복지 담당 공무원이 장애아를 주로 돌보는 보육원에 아이를 보냈고, 경찰이 찾아낸 친부는 친권포기각서를 쓰고 종적을 감췄다. 전후 사정을 알게 된 아이의 고모가 가끔 찾아와서 아이를 보고 갈 뿐, 아이의 부모는 한 번도 아이를 보러 오지 않았다.
이 청년은 스무 살이 되었지만, 여전히 기저귀가 필요하고 대부분 활동을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스스로 할 수가 없어 보육원에 머무르고 있었다. 실질적인 아이의 양육자이고 보호자인 보육원장의 연명의료중단 요구에 의료진도 동의하였으나, 환자의 생부를 찾지 못한다면 아무런 결정도 할 수 없었다.
아이의 아버지는 15년째 연락이 되지 않는 상태였기 때문에, 그동안 아이에 대해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일이 생기면 보육원은 고모에게 연락해서 상의해왔다. 그러나 연명의료중단의 경우에 고모는 아무런 역할도 할 수가 없다. 경찰서에 생부를 찾아봐 달라고 여러 차례 부탁하였으나, 개인정보보호 문제로 협조하기 곤란하다는 답변만 받았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며 거의 포기하고 있을 즈음, 환자 고모가 어렵게 지인의 도움을 받아 생부와 연락이 닿았다. 재혼해서 새 가정을 이뤄 살고 있던 아버지는 연명의료중단에 동의했고, 그제서야 스무 살 청년은 중환자실에서 하늘나라로 떠날 수 있었다.
우리나라는 가족관계증명서에 있는 1촌 이내의 직계 존비속만이 대리결정에 참여할 수 있게 법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영국 일본 등의 경우, 환자를 가장 잘 대변할 수 있는 대리인의 범위를 혈연관계가 있는 법적 가족으로만 국한하지 않는다.
이혼과 재혼이 늘어나고, 여러 가지 이유로 혼자 사는 사람도 많아졌다. 결혼하지 않고 함께 사는 동거 형태도 증가하는 추세이다. 성경은 "다쳐서 길에 쓰러져 있는 사람을 그냥 지나친 동족 사람과 그를 데려가 치료해주고 보살펴준 이방인 중 누가 그의 이웃이 되어준 사람인가?"라고 묻는다. 이 환자의 가족은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