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논객 지만원씨 등이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북한특수군이 투입됐다는 주장의 근거로 내세웠던 이른바 '광수 1호'가 실제로는 평범한 시민이라는 사실이 42년 만에 확인됐다. 5·18 당시 광주역 일대에서 벌어진 계엄군의 집단 발포가 제3공수여단장의 현장 지휘에 따른 것이고 그보다 윗선의 지시가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는 진술도 확보됐다.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진상조사위)는 12일 서울 중구 진상조사위 대강당에서 대국민 보고회를 열고 "광수 1호로 지목된 시민군이 62세 차복환씨로 확인됐다"고 발표했다. 5·18 현장에서 무장 페퍼포그차(최루탄 발사 차량)에 탑승한 모습이 찍힌 사진으로 잘 알려진 이 시민군은 2019년 그의 신원을 추적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김군'(감독 강상우)이 개봉된 것을 계기로 '김군'으로도 불려왔다.
차복환씨는 지난해 5월 영화 '김군'을 보고 5·18기념재단에 자신이 당사자라는 사실을 알렸다. 진상조사위는 지난해 10월 재단으로부터 해당 제보를 전달받고 7개월에 걸쳐 검증 작업을 진행했다. 차씨는 이날 보고회에 참석해 "영화를 보고 (광수 1호가 나라는 것을) 알았다"며 "제 명예가 훼손된 만큼 (지만원씨한테) 사과받고 싶다"고 말했다. 차씨는 왜곡행위가 계속된다면 법적 대응할 의사도 내비쳤다.
앞서 관련자 증언 등을 통해 '김군'으로 유력하게 거론됐던 사람이 김종철(1963년생, 사망)군이란 사실도 확인됐다. 진상조사위는 계엄군의 광주 외곽 봉쇄작전 과정에서 발생한 민간인 집단학살 사건을 직권조사하는 과정에서 김군 직업이 자개공이었고 5월 24일 광주 효덕초등학교 앞 삼거리에서 계엄군에게 연행되다가 사살된 것으로 파악했다. 현장에 있던 제11공수여단 소속 군인, 검시 결과 보고서, 검시 담당의 진술, 시체를 수습해 가매장했다는 주민 진술 등이 근거다. 김군은 사살 현장에 함께 있었던 동료 시민군 최진수(59)씨가 페퍼포그차 사진 속 탑승자로 지목해온 인물이었다.
진상조사위는 1980년 5월 20일 광주역 일원에서 이뤄진 계엄군 집단 발포 때 최모 제3공수여단장의 현장 지휘가 있었다는 증언을 계엄군 출신 58명으로부터 확보했다고 밝혔다. 계엄군이 시위대뿐만 아니라 주택가와 상가에도 발포했다는 증언, 주변 병원 진료기록상 부상자가 최소 16명이라는 조사 결과도 공개됐다. 그간 광주역 발포는 박모 대대장이 시위대 차량을 저지하려고 차량 바퀴에 권총을 발사했다는 본인의 기록, 사망자 4명과 부상자 6명이 발생했다는 발표 정도로만 알려졌다.
광주역 발포가 최 여단장의 독자적 판단이 아니라 상부 지시에 의한 것이라는 증언도 나왔다. 최 여단장이 무전으로 상부에 발포 승인을 요청했다는 당시 무전병의 진술이 확보된 것이다. 진상조사위는 다만 그와 반대되는 내용의 증언도 있는 만큼 추가 조사를 진행할 방침이다.
진상조사위는 국립5·18민주묘지에 안장된 무명열사 5인 가운데 3명의 신원이 파악됐다고 밝혔다.
먼저 지난해 6월 행방불명자로 신고하려다 기각된 신동남씨가 묘지번호 4-90번으로 안장된 무명열사라는 사실이 유전자 검사를 통해 밝혀졌다. 지난달엔 행방불명자로 신고된 김광복씨가 1-38번 묘지에, 김재영씨가 4-93번 묘지에 안장된 것으로 확인됐다. 당초 1-38 묘지 안장자로 알려졌던 양창근씨는 4-96번 묘지 무명열사로 확인돼 제자리를 찾게 됐다.
이날 보고회에선 △계엄군에 의한 성폭행 사건 △도청 앞 집단 발포 당시 조준사격으로 장갑차 위에서 사망한 청년 신원 △북한특수군 광주 침투 주장 등과 관련한 조사 내용이 발표됐다.
진상조사위는 금남로 전일빌딩에서 헬기 사격이 있었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모의사격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도 공개했다. 진상조사위는 당시와 동일한 조건에서 실험하기 위해 경기도 모처에 전일빌딩과 같은 규격의 유리창, 바닥, 기둥을 갖춘 콘크리트 가건물을 양생하는 등 1년간 준비 작업을 거쳤다. 실험 결과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분석 결과가 나오는 3개월 뒤쯤 공개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