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평균 경유 가격이 2008년 6월 이후, 약 14년 만에 휘발유 가격을 추월했다.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세계적인 경유 재고 부족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사태로 촉발된 석유제품 수급난이 주된 원인이다. 최근 시행된 국내 유류세 인하율 확대 조치가 경유 가격 하락에 끼치는 영향이 상대적으로 미미한 점도 경유 가격 상승의 요인으로 꼽힌다.
11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서비스 오피넷에 따르면 전국 주유소 경유 평균 판매가격은 리터(L)당 1,948원으로, 휘발유 평균 판매 가격(1,946원)을 앞섰다. 휘발유 가격은 전날보다 2원가량 올랐지만, 경유는 하루 만에 5원 이상 뛰면서 가격이 역전된 것이다.
경윳값이 상대적으로 더 오른 원인으로는 유럽 내 경유 수급 차질 여파가 가장 먼저 꼽힌다. 유럽은 전체 경유 수입의 60%가량을 러시아에 의존하는데,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러시아산 석유제품에 대한 제재가 이어지면서 경유 수급에 차질이 빚어졌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국제 시장에서도 휘발유보다 경유가 더 비싸게 팔린 현상이 올해 들어 지속됐다. 5월 첫째 주 기준 국제 휘발유 가격은 연초 대비 50.1%(배럴당 91.5→137.4달러) 올랐지만, 국제 경유 가격은 75.6%(92.4→162.3달러) 상승했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경유 가격은 2008년 7월(1,947.8원) 이후 14년 만에 최고 수준”이라고 했다.
지난 1일부터 시행된 정부의 유류세 인하율 확대(20→30%) 조치도 경유 가격 역전을 유도한 배경이다. 정부가 이달부터 유류세를 30% 정률로 인하하면서 휘발유에 매긴 세금은 약 247원, 경유에 붙는 세금은 약 174원 줄었다. 휘발유에 대한 유류세 인하액이 경유보다 약 73원 더 큰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화물업계의 고통도 커지고 있다. 택배 운송, 버스 등 상업용 차량과 굴착기, 레미콘 등 건설장비엔 대부분 경유가 사용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국교통연구원에서 내놓은 화물운송시장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일반 화물 운전자의 평균 지출 중 유류비 비중은 42.7%에 이른다. 지난해 대란을 겪은 요소수도 수급이 안정됐음에도 두 배가량 뛴 가격에서 고착화된 점도 이들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정부는 이달부터 3개월간 대중교통·물류 업계의 부담 경감을 위해 영업용 화물차, 버스, 연안 화물선 등에 대해 경유 유가연동 보조금을 한시적으로 지급하기로 했지만, 효과는 제한적일 거란 관측도 나온다. 대한석유협회 관계자는 “국제 경유 가격 상승과 유류세 인하 효과가 동시에 나타나면서 경유와 휘발유의 가격 역전 현상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며 “국제 경유 수급 상황에 변수가 생기지 않는 이상 당분간 경유 가격이 높은 상태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