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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우주 탐사 선진국이었다. 냉전 시절 옛 소련과 치열한 우주 진출 경쟁을 했다. 1969년 달에 인류를 먼저 보내며 주도권을 잡았다. 달 탐사는 1972년 종지부를 찍었으나 우주에 대한 도전은 지속됐다. 1981년 콜럼비아호 발사에 성공하며 우주왕복선 사업으로 우주를 좀 더 쉽게, 비용을 줄여 오갈 수 있는 방법을 고안했다.
하지만 미국은 2011년을 마지막으로 자국 영토에서 우주인을 지구 밖으로 보내는 일을 중단했다. 우주왕복선 사업은 계획했던 것과 달리 안전하지 않았다. 1986년 챌린저호 폭발 참사가 대표적인 예였다. 챌린저호는 발사 73초 만에 공중 폭발해 우주인 7명이 전원 사망했다. 비용이 큰 부담이기도 했다. 인명을 위협해 가며 많은 돈을 들여 굳이 우주로 향해야 하냐는 회의론이 나올 만했다. 게다가 소련과의 우주 경쟁 시대는 냉전 종식과 함께 저물고 있었다.
미 정부는 대안을 찾았다. 돈을 적게 들여 러시아에서 로켓을 쏘아 올려 우주인을 우주로 보냈다. 플로리다주 케이프 커내버렐 우주정거장은 철거가 됐고, 미국의 우주 개발 의욕은 꺾였다.
신흥 부호 일론 머스크는 어려서부터 우주에 대한 꿈이 컸다. 아폴로 11호가 일군 신화가 영감이 됐다. 우주로켓을 자체 개발해 인류를 달과 화성으로 보내고 싶었다.
때마침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는 민간이 참여하는 우주 개발을 새 대안으로 제시했다. 민간이 검증된 기술을 제시하면 이를 미 항공우주국이 채택하는 방식을 도입한 것이다. 민간 기업의 경쟁을 통해 기술 개발을 유도하고, 비용 절감을 모색하려는 묘안이었다.
머스크는 온라인 결제 대행사업인 페이팔 등으로 축적한 자본 1억 달러를 로켓 개발에 쏟아 부었다. 스페이스X 사업의 시작이었다. 1억 달러는 로켓을 3번 발사할 수 있을 정도의 돈이었다. 세 번 안에 성공하리라 예측했으나 참담한 실패가 이어졌다. 1억 달러는 순식간에 공중에서 사라졌다. 머스크는 낙담하지 않고 돈을 아끼지 않았다. 결국 민간 최초로 로켓을 지구 궤도에 올려 놓았다.
궤도 진입은 시작에 불과했다. 비용 절감을 위해선 로켓의 재활용이 필수였다. 숱한 실험을 거쳐 하늘로 치솟았던 로켓이 지상으로 돌아올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집념은 꿈을 현실로 바꾸었다. 다음은 안전하게 인간을 우주로 보내 귀환시키는 방법을 찾는 거였다. 비용을 대폭 줄이면서도 이를 현실화하기 위해 머스크는 막대한 돈을 지속적으로 쏟았다. 공적 영역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다. 머스크는 2020년 유인 우주선을 우주로 보내는 역사에 나서고, 다큐멘터리는 이 전 과정을 전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