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거도, 대안도, 소통도 없었다."
9일 정영애 여성가족부 장관이 이임사를 통해 새 정부의 여가부 폐지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선거 공약에서부터 당선 이후 행보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여가부 폐지를 공언했으나, 정 장관은 공식적인 정면 대응을 삼갔다. 이제 떠나는 마당에 이임사를 통해 직설적으로 여가부 폐지를 비판한 것이다.
정 장관은 이날 이임사를 통해 "여가부 폐지가 현재까지도 주요 핵심공약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여성가족부는 역사적 소명을 다하였다' '우리 사회에 더 이상 구조적 차별은 없다' 외에 상세한 관련 근거나 추가 설명을 찾기 어렵다"며 "지난 20년간 유지돼 온 정부 부처의 폐지를 주장하려면 그 이유나 문제점, 한계, 대안이라도 제시돼야 한다"고 밝혔다.
정 장관은 자신이 사회·문화·여성분과 위원으로 참여했던 2002년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당시 경험과 윤석열 인수위 간의 차이도 거론했다. 그는 "인수위 기간은 향후 5년 계획을 수립하는 출발점이어서 부처 관계자나 외부 전문가 의견을 듣는 일이 필수적 절차"라며 "하지만 이번 인수위 기간 내내 여가부 업무에 대한 보고나 의견을 제시할 기회는 극도로 제한적이었다"고 털어놨다.
실제 윤석열 인수위는 부처별 업무보고 때 여가부에는 30분만 줬다. 보통 부처별 업무보고는 2시간씩이었다. 최근 공개된 새 정부 국정과제에도 여가부의 일은 없었다. 여성권익 등 여가부의 업무는 모두 법무부, 고용노동부 등으로 옮겨져 있었다. 정 장관은 "여성계 등에서 성명, 토론회, 면담 등을 통해 제시한 요구와 제안, 호소는 거의 반영되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여가부 기능을 타 부처에 쪼개 이관하는 방식에 관해 그는 "여가부가 추진해 온 여성폭력피해자 보호나 경력단절 여성 재취업 관련 업무들이 부처 설립 목적, 업무전달체계가 다른 타 부처에서 차질 없이 추진될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일가족 양립이 어려운 긴 노동시간, 30대에 감소하는 M자형 여성경제활동참가율, 선진국 중 가장 큰 성별임금격차, 여전히 낮은 고위직 여성비율, 반대로 점차 확대되는 다양한 성폭력 위험 등이 우리 사회 구조적 문제이자 여가부가 필요한 이유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여가부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과 관련해선 "여가부 존폐를 둘러싼 국제사회의 관심과 우려를 불식시키고, 국제적 기준과 대한민국의 국격에 맞는, 확대된 예산과 조직, 권한을 통해 보다 실행력을 갖추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정영애 장관은 '국내 여성학 박사 1호'로 학자로서 주로 여성의 노동문제를 연구해 오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를 거쳐 2003~2006년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 2007년 청와대 인사수석비서관 등을 지낸 뒤, 지난 2020년 12월 여가부 장관에 취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