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초대 내각 진용을 꾸리지 못한 채 ‘반쪽 출범’할 가능성이 커졌다.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의 국회 인준과 주요 부처 장관 임명을 두고 여야의 ‘강대강’ 대치가 당분간 해소될 가능성이 희박한 탓이다. 윤 당선인 측은 일단 총리 대행 체제로 정부를 출범시킨 뒤 여당의 ‘발목잡기’ 측면을 부각해 더불어민주당을 압박하겠다는 계획으로 전해졌다.
8일까지 국회 인사청문회를 마친 윤석열 정부 총리 및 장관 후보자 13명 중 여야가 청문경과보고서 채택에 합의한 이는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 등 4명에 불과하다. 민주당은 한 후보자 등을 ‘부적격자’로 낙인찍고 지명 철회를 요구하고 있지만, 윤 당선인 측은 임명 강행 의지를 거두지 않고 있다. 특히 총리는 국회가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해야 임명이 가능해 과반 의석(168석)을 점한 민주당의 협조가 필수다.
이런 현실적 어려움을 감안해 윤 당선인 측은 ‘추경호 총리 대행체제’를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김부겸 총리의 제청으로 추 후보자를 부총리에 임명한 후 그에게 임시 총리(총리대행)를 맡기는 방식이다. 윤 당선인 측 관계자는 “김대중ㆍ노무현 정부도 인정한 인물에 반대하는 건 새 정부의 발목을 잡고 시간을 끄는 훼방으로밖에 볼 수 없다”며 “민주당의 몽니에 끌려가선 안 된다는 게 당선인의 확고한 판단”이라고 말했다.
다만 총리 인준을 조속히 성사시키기 위한 물밑 작업도 병행 중이다. 총리 대행체제가 불가피한 선택이라 해도, 임시방편에 불과한 만큼 장기간 방치는 곤란하다는 판단에서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권성동 원내대표가 9일 박병석 국회의장과 만나 총리 인준 문제를 논의할 것”이라며 “대통령 취임 전 인준은 어렵겠지만 가급적 빨리 국정운영을 정상으로 돌려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당선인 측 역시 “아직 (민주당에) 협조를 요청하고 있다”고 말해 협의가 진행 중임을 시사했다.
초대 총리가 정부 출범 전 국회 인준을 받지 못한 전례는 다수 있다. 김대중 정부 첫 총리로 지명된 김종필 자유민주연합 명예총재는 국회 반대로 이른바 ‘총리 서리’로 지내다 정부 출범 6개월 뒤에야 인준을 받았다. 총리 서리제가 사라진 뒤에도 고건(노무현 정부), 한승수(이명박 정부) 전 총리 등이 새 정부가 임기에 들어간 후 국회 인준 절차를 밟았다.
일부 부처도 청문 정국 장기화로 차관이 중심이 돼 업무를 시작할 것으로 관측된다. 민주당이 인준 불가를 선언해 인사청문회 일정이 미뤄진 부처나 김인철 후보자가 자진 사퇴한 교육부 등은 당장 청문보고서 채택과 임명 강행에 일정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