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이 자녀의 외국어 숙제를 대신하라 시키고 인터넷으로 시험 등록도 하게 합니다. 문제를 제기하니 그런 정도도 못 하냐고 화를 내면서 하기 싫으면 그만두라고 하네요."
8일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공개한 제보 이메일 내용 중 일부다. 직장갑질119는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이른바 '가족회사' 안에서 벌어지는 직장 갑질 사례들을 취합해 공개했다. 작년 10월부터 사용자뿐 아니라 사용자의 배우자, 4촌 이내 혈족·인척이 직장 내 괴롭힘을 할 경우 과태료 처분을 받게 됐다. 하지만 이 같은 가족회사들은 직원이 5인 미만인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실정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사장의 가족들이 요직에 앉아 직원들에게 부당한 지시나 폭언을 일삼는 경우다. 한 직장인은 "사장 아들이 이사인데 항상 짜증과 화가 난 상태로 소리를 지르며 욕설까지 하는데 사장은 아무 제재도 하지 않고 도리어 감싸고 돈다. 모든 직원들이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며 일을 하고 있다"고 제보했다.
복지시설이나 새마을금고, 저축은행, 농수축협회 등 지역의 작은 금융기관들에서 이른바 가족 갑질이 많이 발생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직장갑질119는 "취업이 어려운 시대에 '부모 찬스'를 이용해 복지시설 등에 입사해 승진까지 빨리 해서 직원들을 못살게 구는 사례가 많다"며 "정부 지원금으로 운영되는데도 관리·감독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 제보자는 "새마을금고 계약직 채용 공고에 이사장 딸이 합격했는데 얼마 후 정직원이 되었다"며 "채용 전부터 이미 이사장 딸이 내정돼 있었다는 말도 돌았다"고 밝혔다.
근기법 적용 안 되는 5인 미만 사업장 '괴롭힘 무풍지대'
지난 1월부터 4월까지 직장갑질119에 들어온 이메일 제보 767건 중 가족회사에서 주로 나타나는 '사적 용무 지시' 등 부당한 지시는 27.6%(212건)이었다. 직장 내 괴롭힘뿐 아니라 임금체불과 근로계약서·임금명세서 미작성·미교부, 폐쇄회로(CC)TV 감시, 연차불허, 부당해고 등 근로기준법 위반 행위도 심각한 수준이다.
박은하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5인 미만 사업장이나 5인 이상이더라도 사장 친인척이 회사의 정식 직원이 아닌 사업장은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아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할 수 없다"고 지적하며 법 적용 범위를 5인 미만 사업장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직장 내 괴롭힘이 반복되는 사업장에 불시근로감독을 벌여 노동법 위반에 대해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