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동료가 블로그에 제 뒷담화를 올리는 걸 알게 됐어요

입력
2022.05.09 04:30
24면

편집자주

‘오은영의 화해’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오은영 박사가 <한국일보>와 함께 진행하는 정신 상담 코너입니다

같은 팀에서 일하는 직장 동료가 저를 싫어합니다. 몇 년째 자기 블로그에 제 험담을 올려놓고 제 발언이나 행동을 조롱해요.

동료가 저를 싫어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6년 전쯤입니다. 업무 메일을 주고 받다가 블로그 주소를 우연히 알게 돼 호기심에 들어가 봤던 게 시작이었습니다. 누군가의 업무 능력을 평가하는 글이었는데, 읽자마자 그 글의 주인공이 저라는 걸 알 수밖에 없었어요. 입사 초기였는데, 제가 보고서 양식에 서툴러 저질렀던 실수를 사진 찍어 올려 두고 "지능이 떨어지는 것 같다"고 써놓은 거예요.

제가 잘못한 일이긴 합니다. 하지만 표기 순서의 사소한 오류였고, 한 번 지적받고 수정한 뒤에는 같은 실수를 반복한 적이 없어요. 그런데 뒤에서 그렇게 노골적으로 비아냥거리는 글을 올렸다는 사실을 알게 돼 굉장히 충격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뒷담화는 이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사람 호기심이란 게 뭔지, 내 이야기를 또 올렸는지 자꾸만 보러 가게 됐어요. 동료는 저의 일상 대화, 행동까지 일일이 재단합니다. 한번은 회사에서 밥을 먹다가 연예인들 동안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었어요. 제가 듣다가 "○○○이 벌써 마흔이나 됐어? 생각보다 나이 많네"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며칠 뒤 동료의 블로그에 이 대화가 올라왔어요. 그 자리에 마흔 넘은 선배가 있었는데 그 앞에서 나이 많다고 이야기했다며 '개념 없다'고 써놨더군요.

이런 일들을 동료에게 따지지 않았던 건, 어쨌든 자신의 사적인 온라인 공간에 올린 글들이기 때문이에요. 제가 일방적으로 훔쳐보는 것이고 떳떳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동료는 원래 뒷담화를 많이 하는 스타일이기도 하고 블로그에 저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 욕도 많이 올립니다.

전 어릴 때부터 친구가 많은 편이었습니다. 성격이 모난 데 없이 원만하고 사람을 좋아해서 연락을 꾸준히 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가족 관계도 좋고 화목합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주로 밝다, 성격 좋다, 말을 재미있게 한다 등의 말을 많이 듣습니다. 물론 사람에 따라 말이 많다, 나댄다며 저를 싫어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워낙 사람을 좋아해서 제가 행복을 느끼는 이유도, 가장 상처를 받는 이유도 인간 관계입니다. 그래서 인간 관계에 갈등이 생기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요. 친한 친구 둘이 싸웠을 때 당사자들보다 제가 더 스트레스를 받으며 중재했던 적도 있습니다.

이번에도 처음에는 저를 싫어하는 동료와의 관계를 어떻게든 회복해 보려 갖은 노력을 했습니다. 힘든 일이 있다고 할 때는 밥을 사거나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 위로하기도 했어요. 그 친구가 블로그에 지적했던 저의 말과 행동, 업무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조심했습니다. 하지만 상황은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제가 잘 보이려 저자세를 취해온 것이 악영향을 불러왔는지, 동료는 이제 면전에서도 점점 저를 가르치려 들고 함부로 대합니다. 다만 늘 둘이 있을 때만 그렇게 대해서 회사의 다른 사람들은 사이가 나쁜지 전혀 몰라요.

이제는 회사 일이 잘 안 풀릴 때면, 그 동료가 블로그에 또 내 욕을 하지 않을까 스트레스를 받아요. 그만두는 게 나을까 싶어질 때도 있는데, 설령 여기서 도망쳤다고 해도 나중에 들어간 직장에서 비슷한 상황이 반복될까 두렵습니다. 저를 싫어하는 사람을 회사에서 계속 봐야 할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이나은(가명·32·회사원)

나은씨, 살면서 인간관계에서 오는 갈등은 필연적이죠. 학창시절 12년을 포함해, 성인이 되고 직장에 다니며 과연 아무하고도 척지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사연을 읽어 보면 당신은 다른 사람과 대체로 잘 지내는 사람으로 보여요. 대인 관계에 어려움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죠. 부모님께 사랑도 많이 받고 자랐고 가족 간 사이도 좋고요. 회사에서도 단 한 명을 제외하고는 잘 지내는 것 같아요. 그런데 왜 당신은 자신을 싫어하는 그 한 명에 몰두해서 괴로워할까, 그 이유를 찾아가 봐야 할 것 같아요.

나은씨가 보내 준 정보가 비록 주관적이나, 이 자리에서 잘잘못을 따질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상담이라는 취지에 맞게 나은씨 입장에서 당신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해서 행동하는지 살펴보도록 할게요. 자료를 살펴보면, 직장 동료 A씨는 인간적으로 별로 가까워지고 싶지 않은 스타일이죠. 어느 직장이든 남을 깔아뭉개고 그 사람을 욕하면서 다른 사람과 소통하려는 사람이 있거든요. 업무적으로 미숙해서 벌어지는 잘못은 잘 알려주면 되는 거지 비아냥거리고, 빈정거리고, 모욕할 필요는 없지요. A씨는 다른 사람을 깎아내리면서 자기 존재감을 찾는 사람인 것 같아요.

반면 당신은 주위 사람과 잘 지내는 게 굉장히 중요한 사람 같아요. 누군가와 친하지 않게 데면데면하게 지내는 건 괜찮지만, 갈등이 있으면 못 견디는 사람이지요. 그러니까 그동안 갈등이 생기면, 이를 부딪히며 겪어내기보다는 무조건 잘 지내는 방향으로 참아준다거나 할 말을 안 하고 지나갔던 것 같아요. 갈등을 겪으면서 상대의 마음이나 생각을 확인하며 배우는 게 분명 있는데 말이죠. 물론 갈등을 좋아할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직장 동료 한 명이 자신을 싫어한다는 이유로 회사를 그만둘 생각까지 할 만큼, 당신처럼 영향을 많이 받지 않거든요. 회사 사람이 50명이라면 당신은 나머지 49명하고는 잘 지내고 있는 거잖아요.

사람에게는 자아상이라는 게 있습니다. 자아상이 긍정적, 또는 부정적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을 거예요. 내가 나를 어떤 사람으로 인식하느냐가 바로 자아상이거든요. 제가 보기에 당신은 밝고, 명랑하고, 쾌활하고, 웃기고, 사람 좋아하고, 누구와도 잘 지내는 사람이라는 자아상이 강한 것 같습니다. 물론 당신에겐 실제로 그런 면이 있겠지요. 이 자아상이 거짓이라는 게 아니라 비중이 너무 크다는 거예요.

그러나 A씨 앞에서 당신은 더 이상 명랑, 쾌활하지 않아요. 당신은 사람을 좋아하지만 A씨는 도저히 좋아할 수 없지요. A씨 앞에만 서면 자신이 생각했던 자기의 모습, 자아상에서 벗어나 버리는 거죠. 자아상이 흔들리면서 혼란스럽고 불편한 마음이 들 거예요. 그러니 자꾸 A씨의 마음을 돌려 내가 좋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려고 노력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항상 너무 예쁘다는 소리를 듣고 자란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그런 소리를 점점 못 듣게 될 거예요.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죠.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예쁘다는 게 자기 자아상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자신이 더 이상 예쁘지 않다면 '자기'가 없어지겠죠. 괴롭고 혼란스러울 거예요.

건강한 자아상은 그래서 균형이 중요합니다. 예쁜 나도 있지만 진솔한 나, 호기심이 많은 나, 마음이 따뜻한 나, 뭐든 열심히 하는 나와 같은 여러 자아상이 내 안에 균형 있게 자리 잡고 있을수록 예쁜 나의 비중이 줄어들어도 개의치 않고, 살아가겠지요. 예쁜 나라는 특정 자아상에 얽매일 필요가 없을 거예요. 제가 부모님들에게 적절한 칭찬은 좋은 거지만 지나친 칭찬이 좋지 않다고 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지나친 칭찬은 그 칭찬을 받을 때의 자신의 모습에 얽매이게 돼요.

당신 역시 '누구와도 잘 지내는 나'라는 자아상에 사로잡힌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누군가와 잘 지내지 못하는 나, 누군가로부터 미움 받는 나 또한 나의 모습이라는 것을 인정하기를 어려워하는 것 같아요. 자기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자기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과는 잘 지낼 수 없는 게 너무나도 당연한데 말이죠.

A씨가 당신을 싫어하는 건, 당신이 특별히 무언가를 잘못했거나 원인을 제공해서가 아니에요. 살다 보면 내가 선량한 의도를 갖고 상대에게 최선을 다해도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그런데 당신은 내가 호의를 베풀어도,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상황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아요. 런 사람을 지나치게 '순진성'이 높다고 표현합니다. 복잡하고 미묘한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데 지나치게 단편적인 면이 있어 보여요.

저는 필요하다면 사내에서 두 사람 간의 갈등을 공론화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마다 자기의 기준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고, 당신이 그 사람과의 대화에서 반복적으로 기분이 나쁘다고 느낄 때는 상대가 나를 기분 나쁘게 한 게 맞거든요. 그럴 때는 내가 느끼는 감정이 옳다는 확신을 가지고, 그 감정을 상대에게 표시하는 것도 필요해요. 당신과 A씨와의 관계에서 A씨 쪽으로 기운 힘의 균형을 맞추는 차원에서도요.

지금처럼 둘만 있을 때 조용히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오히려 회사 사람들 앞에서 갈등을 드러내 보세요. A씨가 당신의 뒷담화를 하는 것도 있지만 면전에서 부당하게 대하는 것도 있잖아요. 그럴 때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문제를 제기하세요. A씨 같은 성격의 사람들은 그냥 넘어가면 그래도 되는 줄 알고 더 괴롭힙니다. 인간관계는 결국 작용, 반작용이고 어느 정도 힘의 균형을 맞춰주는 게 필요해요. 싸우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부당하게 공격받지 않도록 나를 지키는 게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나은씨, 누군가 나를 좋아하지 않을 때 자기가 최선을 다하면 그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바꿀 수 있을 거라는 생각 또한 오만일 수 있어요. 내가 내 마음도 잘 다루지 못하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바꾸겠습니까. A씨와의 관계는 그렇게까지 고민할 가치가 없어요. A씨를 당신의 대인 관계 목록에서 지우세요. 당신은 누군가에게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증명할 이유가 없습니다. 누군가와 사이가 나쁜 나도, 누군가가 싫어하는 나도 모두 '나'라는 존재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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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송옥진 기자